김상진씨 '1억 돈가방' 연제구청장에도 줬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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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연제구 이위준(64.사진) 구청장은 5일 "토요일이던 6월 30일 김상진(42)씨가 돈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가방을 줘 이틀 뒤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이 구청장은 "김씨와 지역의 한 일식집에서 점심식사를 함께한 뒤 헤어질 때 식당 입구에서 서류가방보다 조금 큰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건넸다"며 "내가 뿌리쳤으나 김씨가 가방을 내려놓고 급히 떠나버렸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건설업체 한림토건 대표 김씨는 정윤재(43)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소개를 받은 정상곤(구속)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에게 지난해 8월 1억원의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 김씨가 국민.우리은행에서 2650억원의 돈을 빌려 아파트 건설을 추진 중인 연산8동은 연제구에 속해 있다. 김씨가 이 구청장에게 금품로비를 시도한 당시는 김씨가 400억원대 사기.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였다.

이 구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가방을 열어보지는 않았으나 직감적으로 현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무게로 볼 때 거액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김씨와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이틀 뒤(7월 2일)에 김씨를 구청으로 불러 돈가방을 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어 "돈을 받은 당일 사업 얘기나 청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구청장이 밝힌 돈가방의 종류와 크기로 미뤄볼 때 김씨가 정상곤 전 청장에게 준 것과 거의 같아, 안에 들었던 현금은 1억원으로 추정된다.

연제구청은 이 구청장이 돈을 받기 하루 전인 6월 29일 김씨 소유의 ㈜일건이 연산8동 16만7000㎡ 부지에 144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부산시에 제출한 지구단위계획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냈다. 연제구청은 검토 의견에서 일건이 신청한 용적률 291.85%를 285%, 층수 제한은 평균 37층에서 평균 35층으로 소폭 조정하는 수준을 제시했다. 김씨는 이 사업을 위해 땅 구입비 명목으로 2650억원대의 돈을 빌린 뒤 수백억원을 빼돌렸다고 한다.

부산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광준)는 김씨가 각종 사업과 세무조사 무마를 위해 전방위 로비를 벌이면서 금품을 뿌린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김씨의 정.관계 금품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검찰은 이 구청장을 조만간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돈을 돌려줬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전달받은 경위와 돌려준 시점에 대해 세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씨의 금품로비 시도가 연제구청의 검토 의견 제시 시점과 맞물려 있어 연제구청 실무자와 사업승인권을 가진 부산시청에도 금품로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김씨의 연산동 아파트 사업에 참가한 A씨로부터 "연산동 땅의 전체 매수대금은 약 1700억원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A씨는 검찰에서 "김씨가 은행에서 2650억원을 땅 구입비 명목으로 대출받았으나 토지 매입가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950억원 이상을 챙겼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민동기 기자

◆이위준 연제구청장=연산4동 동장, 연제구의회 의원 출신으로 지난해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동아대 원예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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