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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했던 안데르센 인생 나와 너무 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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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가장 혁신적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이라는 수식어는 성립하는 말일까. 그 대상이 로베르 르파주(50·사진)라면 가능하다.

 세계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가 처음으로 방한한다. 자신의 최근작이자 올해 유럽연극상을 수상한 1인극 ‘안데르센 프로젝트’와 함께다.(9월 7일부터 LG아트센터)
 캐나다 출신인 그는 극작가이며 배우이자 연출가다. 그의 예술 영역은 연극·영화·오페라 등 전방위적이다. 작품 스타일은 전위적이며 도전적이다. 동 시대의 예술 흐름을 한발짝 앞서가곤 한다. 그러면서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짜인 플롯으로 무장돼 있다. 연극평론가 김윤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는 “빼어난 이야기꾼이자 왕성한 상상력의 화가이고, 테크놀로지를 100% 활용하면서도 이를 드라마 안에 녹아들게 만드는 창조적인 과학자”라고 극찬한다.

 그의 대중적 감각은 ‘태양의 서커스’의 2004년작 ‘KA’에서 빛났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상설공연장에서 공연 중인 이 작품은 무려 2000여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초대형 블록버스터다. 여기서 그는 아련하면서도 서정성이 물씬 배어나는 장면과 긴장감 있는 드라마를 절묘하게 섞어 단순한 쇼라고 여겨지던 서커스를 단숨에 최고 경지의 예술로 끌어올린 바 있다.

‘안데르센 프로젝트’는 21세기와 19세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을 시공간을 초월해 한 명이 연기해내는 테크놀로지 1인극이다. [LG아트센터 제공]

이번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은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등을 쓴 동화 작가 안데르센를 다룬다. 그의 작품이 아닌 그의 생애다. 놀라운 건 아름다운 동화와 달리 안데르센의 삶은 처절했다는 점. “안데르센이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라고 르파주는 말한다.

 이 부분, 바로 고독하고 우울한 생애라는 점에서 르파주와 안데르센은 닮아 있다.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와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 밑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며 안데르센이 유년기를 보냈듯, 르파주 역시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 탓에 따돌림을 당하며 마약에 빠진 젊은 시절이 있었다. 못생긴 외모로 콤플렉스를 지닌 안데르센이 한 여자만을 마음에 품고 결혼도 못한 채 고독한 삶을 살아갔다면, 르파주 역시 동성애자로 한때 성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안데르센이 자신의 궁핍한 삶을 동화라는 정반대의 영역에서 예술로 승화시켰듯, 혼자만의 세계에 탐닉하던 청년 르파주는 이제 엑스마키나란 창작 집단을 이끌며 공동 작업을 즐겨하고 있다.

“탐구할수록 안데르센과 나는 비슷하다. 그래서 섬뜩하지만 몰입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르파주. 고독과 고통, 그리고 이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나란히 겪었던 과거와 현재의 천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어떤 교감을 했을까. 02-2005-1114
 

최민우 기자

◆유럽연극상(Europe Theatre Prize)=올해로 11회째. 유럽연합(EU)의 후원 아래 유럽극장연합과 국제연극평론가협회가 주관한다. 역대 수상자들은 20세기 이후 연극사를 수놓은 인물들이다. 세계적인 안무가 피나 바우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해럴드 핀터, 현대 연극의 표상인 피터 브룩, 이미지 연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 등. 유럽을 넘어 세계 연극계 최고의 권위와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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