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업에 세상을 맡기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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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주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렸던 스위스 다보스에 올해 첫 등장한 표지판이 화제로 떠올랐다. 화살표와 함께 '다보스를 지켜보는 공공의 눈(Public eye on Davos)'이라 쓰인 팻말이 시내 곳곳에서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표지판은 별다른 쟁점이 없어 무료해 하던 포럼 참가자들과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23일 팻말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가 봤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회의장 진입로 위쪽으로 5분가량 경사를 올라가자 양복 차림의 우스꽝스러운 커다란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시거를 문 거만한 표정의 인형 앞쪽에는 '큰 기업들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놔두지 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스칼렛 슈트라세 19번지. '다보스를 지켜보는 공공의 눈'이란 이름의 포럼이 열리고 있는 현장이다. 그러나 WEF와는 다르다. 세계화를 감시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기 위한 대안포럼이기 때문이다.

'퍼블릭 아이 온 다보스'는 해마다 WEF 기간에 맞춰 열린다. 2000년 시작돼 올해로 5회째를 맞은 국제회의다. 이번 대회에는 30여개국에서 5백여명의 비정부기구(NGO) 인사들이 참여했다. 이 포럼은 그간 무관심으로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올해 개막식에는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매리 로빈슨이 기조연설을 맡아 행사에 힘을 실어줬다.

좁은 행사장 입구를 들어서자 수백명의 참가자가 내뿜는 열기가 후끈했다. 포럼을 총괄진행하는 마티아스 헤르펠트(31)가 웃는 얼굴로 맞았다.

그는 "반다보스 포럼의 역할은 WEF와는 다른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퍼블릭 아이 온 다보스'의 핵심 테마는 기업의 사회.생태적인 책임이라고 했다. WEF 측이 '안보와 번영을 위한 협력' 같은 그럴싸한 주제를 내걸지만 '말만 번지르르하지 속빈 강정'이라는 것이 헤르펠트의 생각이다.

그러나 WEF를 반대하기 위한 폭력시위에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퍼블릭 아이 온 다보스=매년 1월 말 WEF가 열리는 다보스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국제회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다. 전 세계 10여개 비정부단체가 공동결성한 '베른 선언'이라는 NGO가 주관한다.

다보스=유권하 특파원

사진=쿠르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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