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수정 파문/사전운동 시비/「불끄기」 수위조절 나선 YS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청와대 “관례다” 중징계 소극적/민자 일각 “측근 실수도 일벌백계해야”
정부·여당이 단체장의 사전선거운동 의혹,우루과이라운드(UR) 이행계획서 수정시비,북한 핵문제 대처 혼선 등으로 빚어진 「위기국면」의 돌파를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김영삼대통령은 1일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2월에는 민자당 당직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일본·중국방문 결과 설명과 함께 최근 문제가 된 사안들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청와대와 민자당은 민주당의 파상공세를 차단하는 등 효과적인 국면전환 방안을 강구하는데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청와대는 우선 민주당의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최기선 인천시장·박태권 충남지사의 사전선거운동 시비를 어느 선에서 마무리짓느냐를 놓고 고심중이다. 김 대통령이 1일 「깨끗한 선거」를 강조했을 때만해도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던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2일에도 『누구든 법을 어기면 엄단할 것이며 몇사람이 희생되더라도 선거혁명을 이룩하겠다』고 강조하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단체장들이 관례에 따랐을뿐』이라며 적극 옹호하던 분위기에서 다소 후퇴하긴 했으나 여전히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정도의 잘못은 없다』며 중징계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냥 넘어갈 경우 문민정부와 대통령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줄 것』이라며 엄격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측은 두 시·도지사의 물의에 대한 경중 저울질작업에 착수,문책의 강도를 꼼꼼히 따져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은 『최 시장의 경우 혐의가 비교적 가벼운 것으로 드러난 만큼 경고받는 정도에서 그칠지 모르나,몇가지 혐의를 함께 받고 있는 박 지사에 대해서는 중징계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혀 분리처리쪽으로 낙착될 공산도 없지 않음을 시사했다.
UR 수정문제와 관련,대통령이 2일에도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만큼 정부의 사과담화문 발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문책을 요구하고 있는 김양배 농림수산부장관에 대해서는 『국익을 위해 나름대로 애썼는데 경질은 너무 가혹하다』는 동정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핵문제 대처와 관련해 혼선을 빚게한 황병태 주중 대사에 대해서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책임을 추궁하기보다는 일단 용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김 대통령이 2일 『북경에서 안보문제와 관련한 발언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정책에 흔들림이 없다』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해석이다.
○…김 대통령과 조찬회동을 마치고 나온 민자당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의 서슬퍼런 언급과 관련,앞으로 엄단하겠다는 쪽에 비중을 둔 것으로 최 시장과 박 지사에 대해선 별도의 조치가 없는게 아니냐고 해석하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김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워낙 예측불허인 점을 들어 전격 인사조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순봉대변인은 김 대통령의 조찬회동 당부내용을 발표한뒤 『앞으로 잘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개인적인 해석을 말했다.
민주계의 한 당직자는 『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대통령의 말을 잘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며 『최 시장은 선관위에서 경고조치가 취해진 만큼 별도의 조치가 없을 것이며,박 지사의 경우도 선관위 해석을 더 지켜본뒤 결정하겠지만 큰 일이야 있겠느냐』고 관측했다.
그러나 여권의 고위소식통은 『여러가지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선 정면돌파로 나가야 한다』면서 『대통령도 강경조치를 신중히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민자당은 그동안 통일된 입장을 세우지 못한채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왔다. 물의를 일으킨 장본인들이 김 대통령의 측근인 만큼 사후조치에 대해서는 계파별 견해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계는 『일선 기관장들이 앞으로도 문제를 일으키면 정부측에 엄하게 다스리라고 촉구하겠다. 그러나 최 시장·박 지사 문제는 정부가 알아서 조치할 일』(문정수 사무총장)이라는 말이 잘 대변하듯 두 「동지」에 대해 여전히 동정적이다.
반면 민정·공화계내에서는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면 일벌백계고,측근들은 실수를 해도 그냥 지나가면 당장의 난국돌파는 물론 앞으로 나라를 끌고 가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등 읍참마속을 촉구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향후 대통령의 결심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민자당내엔 UR협상 실패에 대해서도 강도높은 대국민사괴를 함으로써 국회 비준문제 역시 정면돌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자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정부입장이 어쨌든 관철되지 못했고,「정부·여당이 농민을 속였다」는 민주당 주장이 제법 먹혀들고 있는 상황인 만큼 몇가지 작은 성과만을 홍보하는 정도로는 궁지탈출이 어렵다는 생각이다.<이상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