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운동 명칭 싸고 학자들간 감정대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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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그 결과 학계는 동학 1백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에 통일적대응을 못하고 있다.1백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하려던 체신부 계획이 합의된 명칭을 찾지 못해 무산됐고,北韓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의 공동기념행사 개최 제의를 진지한 검토 없이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1894년 갑오년 反봉건.反외세의 기치아래 들풀처럼 번져나갔던 농민봉기를 학자들이 지칭하는 명칭은 동학혁명.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운동.동학농민혁명운동.갑오농민혁명.갑오농민전쟁.동학무장봉기등 무려 10가지에 달하고 있다.
일제때는 막 연히 동학란이라는 명칭이 사용됐으나 해방후 학문적 연구가 진척되면서 학계를 중심으로 동학혁명이란 용어가 널리사용됐다.朴正熙군사정권 시절 국사교과서는 혁명이란 단어의 민감성을 의식,동학운동.동학농민운동이라는 모호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80년대 중반부터 진보성향의 소장학자들이 농민이라는 표현으로 계급성을 강조하고,혁명과 구별되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가열됐다.
90년6월「동학농민혁명 용어와 성격」이란 제목의 토론회가 열려 학계의 자율적 명칭합의를 시도한 적도 있지만 진보와 보수진영의 현격한 인식차이를 확인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학계의 논란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우선 농민이란 표현의 포함 여부로 혁명주체에 대한 인식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둘째는 동학이란 표현을 포함하느냐는 문제.종교적 성격 부여에 관한 문제를 빼자는 측은 대신 갑오라는 간지를 앞세우는게 보통이다.셋째는 혁명으로 보느냐,전쟁으로 보느냐는 점.전체적 성격규정에 대한 문제로 두 진영간 견해차이가 가장 첨예한 부분이다.정권탈취 의도를 전제로 한 亂이란 표현은 더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이란 표현을 채택하고 있는 姜萬吉(高大).愼鏞廈(서울대).鄭昌烈(한양대)교수,동학농민전쟁을 내세우는 李離和역사문제연구소장등은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鄭교수는『동학이 당시 상황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나 동학세력을 봉기주체로 보기는 어려우며 특 히 이념적 토대를 동학이 제공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면서 동학이란 단어를 빼고 있다.또 혁명이라면성공여부에 관계없이 기존질서에 대체되는 국가구상이나 생산구상을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반면 朴成壽(정신문화연구원).李炫熙(성심여대).金昌洙(동국대).趙恒來(숙대)교수등은 과거부터 일반적으로 사용돼온 동학혁명이란 명칭을 견지하는 보수적 입장에 있다.李교수는『동학은 당시 봉기의「外皮」와도 같은 것으로 이걸 빼고는 성격 규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북한 사학계가 갑오농민전쟁이란 표현을 쓰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동학 1백주년이 되도록 학계가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자리매김을 못하고 계속 논란을 빚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그러나 어차 피 학자마다 다른 史觀差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통일된 명칭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다만 앞으로 새로운 사료발굴등을통해 학계의 연구가 더욱 진전되면 좀더 실상에 근접한 자리매김을 기대해 볼 수 있을 전 망이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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