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신자(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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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통혁당사건으로 20년이 넘게 옥고를 치른 신영복씨는 출감후 지난 88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옥중서신집을 출간했다. 지금은 성공회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옥고를 치르는 동안 가족들에게 띄워보냈던 절절한 편지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중 형수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떡신자」라는 제목의 글엔 이런 구절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기독교·천주교 신자가 늘고 초파일이 가까워 오면 불교신도가 늡니다. 그외에 떡이나 위문품이 곁들여진 종교집회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신자수가 부쩍 늘어납니다. 보통때는 신자가 아니다가 이런 특별한 때에만 집회에 나오는 시자를 「떡신자」,또는 「기천불종합신자」라 부릅니다. 저도 떡신자의 경험이 적지 않습니다.』
저자는 신자도 아니면서 떡을 얻어먹기 위해 종교집회에 참석한다는 것이 「쪽 팔리는」 일이긴 하나 그곳에는 떡신자들끼리의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체면이나 변명따위를 팽개쳐버린 솔직한 동류의식의 편안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자는 이런 설명속에서 필자의 참담한 은유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는 갇힌 공간속에서 거친 급식의 기계적 반복에 대한 무의식적인 혐오와 저항이며,사람의 정성이 담긴 따뜻한 음식에 대한 갈망의 표출일 것이다. 나아가서는 끈끈한 사람과 정으로 얽힌 가족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갈망과 그리움이 어찌 떡신자들에게 국한되는 일이겠는가.
전국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저녁식사를 너무 일찍하는 바람에 밤이면 배가 고파 잠을 설치고 있다는 소식이다. 겨울엔 오후 4시까지,여름엔 5시까지 저녁식사를 끝내기 때문에 아침식사 시간인 오전 7시30분까지 15∼16시간을 굶어야 한다는 얘기다.
인간의 본능중에 식욕이 가장 우선이라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새남터를 나가도 먹어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배가 고프면 정서가 불안해지고 일도 안된다. 자유를 빼앗긴 재소자들이야 가족 걱정까지 더욱 간절해질 것이다. 해지기전에 모든 일과를 마치도록 돼있는 행형법 때문이라는데,재소자들을 정서불안으로 잠못들게 하는 법규라면 역효과가 나기가 십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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