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은 살아서 돌아온다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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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피랍자 가족들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된 고 심성민씨의 유족들을 만나기 위해 경남 고성군 심씨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29일 경기도 분당의 아프가니스탄 피랍자 가족모임 사무실에는 환호와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날 오후 피랍자 19명 중 한지영(34).이정란(33).안혜진(31)씨를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2명의 인질이 석방됐다는 희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기대는 했지만 이처럼 일찍 석방될 줄은 몰랐다"며 "피랍자 전원이 한 비행기 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전날 인질 석방 합의가 이뤄졌지만 탈레반이 이를 철회하지 않을까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탈레반에 납치 살해된 심성민씨의 아버지 심진표(62.경남도의원)씨는 "피랍자들이 한두 명씩 풀려나는 소식을 들으니 아들의 죽음이 더욱 억울하게 느껴져 피가 끓어 오르는 심정"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꿈만 같아요"=고세훈(27)씨의 누나(29)는 방송을 통해 동생의 얼굴을 확인한 뒤 "실감이 안 나고 믿기지 않는다"며 "하루빨리 동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영(36)씨의 오빠 이종환(38)씨도 "동생이 몸이 많이 아팠다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며 "얼른 공항에서 건강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정란씨의 어머니 김형임(55.제주도 서귀포시 법환동)씨는 "무사히 풀려나 이제 만날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김씨는 "지난 40여 일 동안 아이가 몸 성히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며 "서울에 가 있는 아들을 통해 피랍자 소식을 들었지만 마음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며 그동안 애태웠던 심정을 털어놨다.

한지영씨의 언니 한지원(35)씨는 "어제 석방 합의소식 때에는 비교적 담담했는데 오늘 정부로부터 석방소식을 들으니 실감난다"며 "몸이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임현주(32)씨의 아버지 임석지(59)씨는 "뉴스를 통해 딸의 석방 사실을 알았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야 실감이 날 것 같다"며 기뻐했다. 가족들은 피랍자 석방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슬람권 대사관 방문을 중단하기로 했다.

◆고 심성민씨 가족 위로 방문=피랍자 가족들은 이날 탈레반이 살해한 심성민씨의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경남 고성군에 있는 심씨의 집을 찾았지만 심씨의 아버지 심진표씨를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가족모임은 "석방 합의 소식이 전해진 뒤 슬픔에 잠겨 있을 심씨 유족을 먼저 방문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차성민(30) 가족대표는 "전날 가족들이 피랍자 전원 석방 합의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모습조차 죄스러울 따름"이라며 "가족들이 돌아온다는 기쁨보다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심진표씨는 이에 앞서 이날 오전 "피랍자들이 귀국한 뒤 (정부와 교회에) 피랍 과정의 전말을 물을 것"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이런 일을 당해 보니 문제가 많다고 느꼈다"며 "앞으로 해외선교와 봉사가 이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전모를 모두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분당=정영진.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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