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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 CIA국장이 도와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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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9일 오후 1차로 풀려난 한지영.안혜진.이정란씨 등 여성 3명이 아프가니스탄 가즈니주 칼라이 카지에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이날 3차로 풀려나온 4명이 카라바그 지역에서 ICRC 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 인질 중 최고령자인 유경식씨(55)가 차창 밖으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가즈니주 AP.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인 인질 사태가 41일 만에 극적으로 해결된 데는 미국의 막후 지원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랍 사실이 확인된 지 사흘 만인 지난달 23일, 마이클 헤이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주미 한국대사관이 초청한 자리에서 "최정예 인력을 동원해 한국을 돕겠다"고 약속했다고 워싱턴 소식통들이 밝혔다.

헤이든 국장은 "인질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탈레반과 지역 사정에 정통한 최정예 요원들을 투입해 관련 정보와 협상 아이디어를 한국에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이를 지켰다. 공군 장성 출신인 헤이든 국장은 2000년대 초 주한미군 부참모장으로 근무했던 지한파로, 한국인 인질사태를 자기 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열성적으로 지원에 나섰다.

미 국방정보국(DIA)도 요원 두 명을 현지에 급파해 인질들이 납치된 가즈니주의 최신 정보를 한국 측에 실시간으로 제공했으며, 군사위성이 찍은 영상 정보도 분석해 줬다. 워싱턴의 미 국방부 한국과와 카불 주재 미 대사관 무관부도 요원들이 보내온 정보를 100% 한국과 공유하며 하루 3~4차례씩 브리핑 해줬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덕분에 한국 측은 탈레반과 인질 정보를 훤히 파악, 유리한 상태에서 대화에 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 등 탈레반에 영향력이 있는 인접국을 동원해 인질 석방을 설득하게 한 전략도 상당 부분 미국의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미국으로선 이번 사태 해결로 '인질 납치 세력에 보상 제공은 없다'는 원칙을 관철한 셈"이라며 "이와 함께 인질사태 해결을 지원함으로써 한국 내에서 한때 제기됐던 '미국 책임론'을 불식하고, 한.미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주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테러범과 협상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한국에는 이를 강요하지 않는 한편, 철저하게 물밑에서 지원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이 인질 억류 지역 바깥의 탈레반 세력을 공격한 '외곽 때리기'도 지도부의 공포심을 자극해 결과적으로 인질 석방에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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