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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시시각각

아프간 인질 사태의 끝자락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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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8명이나 되는 한국 여성이 테러범들 손에 인질로 붙잡혀 있는데 ‘대리(代理) 인질’을 자원하는 한국 남자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발생하고 얼마 후 아시아권 국가의 한 대사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대신 인질로 붙잡혀 있을 테니 여성들은 풀어 달라”며 아프간행을 자원하는 한국 남자가 없다는 데 실망했다는 것이다.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도 남자가 한 명 있긴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그는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내가 대신 인질로 가서 저 사람들을 풀어 주라고 하면 안 될까. 나는 특수훈련도 받고 해서 그 사람들(탈레반)하고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말을 자기 비서에게 했었노라고 어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만난 자리에서 털어놓았다. 진작 좀 더 큰 소리로 그런 말을 했더라면 “한국에는 남자도 없느냐”는 핀잔은 안 들어도 됐을 텐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한국 남자들이 너도나도 인질을 자청하고 나섰더라면 국제사회에 화젯거리는 됐겠지만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됐을까.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되레 상황이 악화되진 않았을까. ‘마초의 쇼맨십’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그나마 이 정도 선에서 사태가 41일 만에 끝나게 된 것은 인질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본다. ‘여성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슬람의 율법이기도 하지만 탈레반이 여성 인질을 해칠 생각은 처음부터 없지 않았나 싶다. 여성 인질 살해에 따른 비난 여론은 탈레반으로서도 감당키 어렵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서서히 압박 강도를 높여가면서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병법(兵法)의 기본 가운데 하나다. 협상도 마찬가지다. 상대가 제 풀에 지쳐 전의를 상실했다고 판단될 때 빈틈을 파고들어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탈레반의 빈틈은 인질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여성 인질들을 관리하는 현실적 부담이 커지면서 탈레반도 하루속히 문제를 털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 틈을 노려 정부 협상팀은 연내 아프간 철군, 기독교 선교 활동 중단 등 포장만 그럴듯한 카드로 퇴로를 열어줌으로써 사태를 종결시킬 수 있었다.

애초에 여성들을 인질로 잡은 것이 탈레반의 실책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권국가를 상대로 당당히 협상을 벌여 명분 있는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큰 수확이다. 탈레반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전 효과가 컸다. 몸값 지불이나 아프간 정부의 특별사면을 통한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관한 이면합의가 있었다면 이는 명백한 실리다.

힘든 조건에서 정부가 외교력과 협상 수완을 발휘해 남은 인질의 전원 석방을 이뤄낸 것은 분명 높이 평가할 일이지만 우리가 잃은 것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남자라는 죄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 ‘테러단체와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어겼다. ‘인질범이 겨눈 총에 당장 자식이 죽게 생겼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는 항변도 물론 가능하겠지만 탈레반과 직접 협상한 한국의 선례는 두고두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지도에서 아프간이 사라지게 된 점도 뼈아픈 손실이다. 정부가 이미 아프간을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 데 이어 현지에서 활동 중인 비정부기구(NGO) 요원의 철수를 약속함으로써 아프간은 사실상 한국인의 시야에서 실종됐다. 아프간의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할 때 외교적·경제적 손실도 작지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슬람권에 대한 한국의 이해와 네트워크 수준의 현실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타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열린 자세와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 기회도 됐다. 이번 사태를 이슬람권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상호관계를 확대·심화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억울하게 숨진 두 남자의 넋을 그나마 위로하는 길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