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32) 『기저귀 차고 다니는 애도 아니겠고…그렇기야 하겠냐만,걔도 좀 큰일이다.다 큰 녀석이 툭하면 짜고 다니니.그건 그렇고,어디 갔는지나 찾아 봐야 되지 않겠니?』 명국이 웅얼웅얼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이길남은 미간을 찌푸리고 방안을 둘러보았다.시러베 잡것들 같으니.다들 지 배 부르면 그만이라니까.너나 없이 조선놈들이란 앞에거밖에 몰라서,지 신수 편하니까 눈에 뵈는 것들이 없어들.
오늘은 마침 일을 쉬는 날이었다.천황이라던 누구라던가,하여튼뭐 그런 잘 난 사람의 생일인지 제사인지 그런 날이라며 무슨 큰 선심이나 쓰듯이 하루일을 쉬었고,그건 또 무슨 사정인지 밥상도 기름이 흘렀었다.
길남이 부시럭거리며 일어섰다.
『나가서 어디 갈만한데를 좀 돌아보고 오겠습니다.무슨 놈의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밖에 바람 불든?』 『아저씨는 뭐밤새 울다가 누구 장사지내냐고 하고 계시네요.』 돌아서는 길남의 뒷모습을 보며 명국이 중얼거렸다.저 자식은 또 왜 메주볼이나와서 저런담.그래도 저게 심성이 곱기가 그만이야.무슨 놈이 저렇게 남 생각을 하나 모르지.
밖으로 나온 길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방파제쪽으로 걸었다.그러나 귓불이 아프게 바람만 휘몰릴 뿐 늘 가곤 하던 방파제쪽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혹시나 싶어 길남은 아파트쪽으로도 올라가 보았다.
일본인 가족 숙소 앞 오르막길을 올라가 보았지만 신사로 오르는 그 길목에도 전신주에 희미하게 매달린 불빛 뿐,자주 가곤 하던 나무밑에도 어둠 만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같지 않은 게 속은 되게 썩이네.아프면 방구석에나 처박혀있을 일이지.투덜거리며 발길을 돌린 길남이 숙소 쪽으로 향했을때였다.숙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앞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사람이 보였다.
『성식이냐?』 머리카락을 이마로 쏟아붓고 있는 바람 때문에 길남은 소리치듯 물었다.자루처럼 쭈그리고 누워 있는 그에게 다가가며 길남이 핀잔하듯 말했다.
『제 이름 부르는데 대답도 못하나.』 성식이 쭈그리고 앉은채길남을 올려다 보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