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반영 다양화하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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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초·중등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시·도교육감들이 내신 반영방식을 대학 자율에 맡기자는 제안을 했다. 이는 학교 교육의 다양화와 대학의 자율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있는 문제 제기라고 본다. 특히 상문고 비리 폭로이후 내신에 대한 불신이 높은 터에 내신 자체가 안고 있는 불공정성 문제점들을 차제에 해결하려는 시도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교육감 건의에서 지적되었듯 현행 내신제는 지역차·학교차를 무시한 무차별 15등급 적용이라는 매우 획일적 평가를 하고 있다. 이는 지역차와 학교차를 평준화하지 못한채 평준화정책을 실시한 결과로 생겨난 부작용이다. 지역간·학교간에 엄연한 실력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평가가 아닌 절대 평가를 함으로써 현실적 성적차를 감안치 않는 무리가 계속 따르고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평준화정책의 기반 자체를 흔들 수는 없다. 평준화라는 기본틀을 유지하면서 교육의 상대적 수월성을 인정하는 평가방식이 도입돼야만 교육의 평준성과 수월성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때문에 우선 내신의 대입반영비율 40%를 현행대로 유지하되 평가는 대학에 맡기는 방식이 옳다.
예컨대 인문계를 지망하는 학생의 내신평가는 인문계 학과의 내신에 가중치를 더 주는 방식이 가능해진다. 또 연세대가 밝힌 특별전형제 도입에서처럼 학생의 리더십이나 봉사정신에 더 가중치를 줘 입학전형에 참고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런 다양성과 자율성이 확보되면 서울대 음대처럼 대학 자체의 콩쿠르를 실시해 입상자를 입학시키는 방법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문제는 내신의 다양화와 대학의 자율적 평가방식에 대해 학부모들의 지나친 이기심이 작동할 경우 내신평가의 다양화와 자율화는 올바르게 정착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예고의 내신평가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학부모 시위를 보노라면 내신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이 얼마나 첨예한가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내신의 다양성이나 자율적 평가보다는 기계적·산술적 평가방식이 내신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확실한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계적·산술적 적용이 학부모들간의 시비를 잠재우는 기능을 할지는 몰라도 교육의 수월성을 해치게 된다.
내신의 다양화와 대학의 자율적 선발권이 확대된다면 A고에 대한 평가는 더 높이고,B고에 대한 내신평가는 더 낮추는 기준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돼야 한다. 획일적이고 산술적인 내신평가가 학교교육을 산술적 평가 성적에만 매달리게 했고,특활이나 예체능 학과의 내신은 치맛바람에 맡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14년간 실시된 내신제의 발전적 개선을 위한 새로운 평가방식 도입이 이번 교육감들의 제안을 계기로 활발하게 연구·검토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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