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불안감 번지자 청와대 당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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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지경까지 놔둔 외교안보팀 교체 거론/“미와 조율” 한 외무 방일수행도 돌연 취소
청와대 긴급 안보장관회의는 오전 10시에 시작되어 오찬으로까지 이어지며 3시간여동안 계속됐다.
김영삼대통령은 평소와는 달리 굳은 표정으로 『북한 핵문제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세계는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가장 크다』고 전제,『오늘 회의에서는 깊이있고 충분한 얘기를 해야겠다』고 피력.
이영덕부총리는 자신도 84년부터 남북회담 대표로 일해왔지만 늘 그래왔다면서 『참 불가능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단언.
○…청와대는 김 대통령의 방일·방중을 목전에 두고 북한의 전쟁불사 경고가 나오면서 일부 국민들 사이에 전쟁공포증이 확산되는 등 한반도 안보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당혹.
김 대통령은 일요일인 20일 정종욱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미국 안보회의 내용과 일본·중국 방문계획을 보고받은데 이어 안보장관회의 소집을 지시했다. 청와대와 안기부·외무부·국방부 등 전 외교·안보기관이 총비상체제에 들어갔다. 안보관계자들은 『위기감 조성이 바로 북한측이 노리는 수』라며 북한의 전쟁불사 발언을 「엄포」 수준의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만의 하나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군사동향을 엄밀히 체크하는 한편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점검하는 등 부산.
한 안보고위관계자는 『대북정책 전반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면서 우선 군사적 위협에 대응키 위해 방어용인 패트리어트미사일의 배치와 팀스트리트훈련 재개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
청와대는 안보장관회의가 시작되는 시간에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을 강행하겠다고 외교부 성명으로 밝힘으로써 사태가 더욱 어려워지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긴장.
청와대는 북한이 NPT 탈퇴를 강행키로 한다고 한 것은 앞으로 일절 사찰을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곧 핵시설 연료봉을 교체하는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예견.
이 당국자는 미국 항공모함 전단의 한국해역 항진과 관련,이 기동함대의 본래 작전목표가 북한은 아니며 다른 훈련을 위해 예정돼 있던 것이지만 한반도 유사시 투입될 여지는 있는 것이라고 여운.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당국은 북한이 전쟁운운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지경으로 사태를 만든데 대한 여론의 비판에 전전긍긍.
외교·안보관계자들은 『우방에 우선하는게 민족』 운운하며 평화적 해결만을 강조함으로써 대응의 한계를 미리부터 노출,북한이 「착각」하도록 했다는 여론의 질타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고심.
또 외교·안보당국 내부의 불협화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며 구구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승주 외무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팀이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에 상당한 약세를 보여왔고,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북한에 미리 다 내보였기 때문에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걱정이라고 지적.
따라서 긴급한 사태가 일단 지나가면 청와대를 포함한 외교안보팀의 대폭적인 교체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진단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는 사태가 긴박하게 움직이자 김 대통령의 방일에 수행키로 돼있던 한 장관을 국내에 남도록 해 미국 등과의 접촉을 유지토록 하는 등 분주.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외무장관이 수행하지 않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인데 청와대측은 한일 외무장관 회담이 없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면서 그러나 한 장관이 중국방문은 수행케 된다고 설명.
또 당초 김 대통령을 수행키로 했던 박관용 비서실장은 안보상황을 감안,국내에 남기로 했는데 박 실장은 김 대통령을 대신해 국내 업무를 총괄케 된다는 것.<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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