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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을살리자>21.제주 감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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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제주도남제주군남원읍하례리 농촌진흥청 감귤연구소는 최근 묘목으로 보존해 온 토종 감귤의 뛰어난 유전적 특성을 이용한 신품종개발에 바싹 달라붙어 있다.
품종별로 세그루씩 보존해 온 36그루의 토종 감귤 묘목에 외국산 우량품종의 형질을 결합시켜 단맛과 신맛이 적절히 조화되고,추위에 잘 견디며 질병 저항성이 우수한 신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제주도 농업수입의 67%를 차지하며 관광수입과 함께 제주도민의 젖줄이 돼 온 국내 감귤시장의 개방에 대비키 위해서는 외압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품종개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연구 과정에서 溫州계통등 일본 품종 도입 이후 거의 멸종된 토종 제주 감귤이 藥性과 내병성 등에서 뛰어나 무공해 감귤을 생산해 내기에 적합한데다 신맛이 다소 도는 감귤을 선호하는 캐나다등 육류를 주식으로 하는 나라의 시장을 파고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현재 농진청이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 토종 감귤의 종류는 山橘.靑橘.柑子.唐柚子.洞庭橘.獅頭柑.柚子.甁橘.扁橘.檳橘.枳殼.
石金橘.紅橘등 13가지.
그러나 이 가운데 신품종 개량에 필수요건인 자연상태의 늙은 나무가 보존되어 있는 것은 9종 뿐.
편귤.사두감.감자는 제주도내 각종 건설사업과 소유주의 무관심등으로 벌채돼 감귤연구소에 묘목으로 만 보존돼 있고,석금귤은 74년 북제주군애월읍명월리에서 한그루가 죽은 상태로 발견된 이후 멸종된 것으로 확인됐다.
李朝 正祖때 李成之가 쓴『才物譜』에는「귤중에 편귤.밀귤은 귀품이고,양귤은 오래가며,금귤은 3개월 동안 저장할 수 있다.세화첨은 早紅하며 복귤은 맛이 가장 달다」고 네가지 품종을 더 소개하고 있다.만약 이들 품종이 농진청에서 파악한 13개 품종의 다른 이름들이 아닐 경우 훨씬 더 많은 토종이 사라져 버린셈이다. 농진청과 학계에서 파악한 토종 감귤의 일반적 특성은 내한성.내병성이 뛰어나며,단맛과 신맛을 기준으로 할때 병귤.빈귤.홍귤.동정귤은 생식용으로 가능하고,당유자.사두감.지각은 신맛이 높아 식용으로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90년 제주도에 몰아닥친 한파로 6천여㏊ 감귤 재배면적의 절반 정도가 피해를 보았으나 토종 감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고,신맛을 내는 구연산 함유량이 높아 수입종보다 영양가와 저장성 측면에서도 우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귤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日帝때 일본인들에 의해 재배가시작됐거나 壬辰倭亂때 일본에서 전래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제주도의 토종 감귤이 일본으로 전래됐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사실이 점차 확인되고 있다.
濟州大 許仁玉교수(60)는「세계적 품종인 溫州밀감은 토종 감귤인 洞庭橘이 일본으로 건너가 재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돌연변이종」이라는 논문을 81년에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許교수는 논문에서「1800년대 일본인들이 쓴 농업서적에 溫州밀감은 洞庭橘에서 유래됐다는 설명이 자주 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75년부터 5년간 성장조건에 의해 유전적 특성이 변하지않는 FLAVONOID등 2차성분을 분석한 결과 ,溫州밀감과 다른 밀감의 有緣관계는 1~10%에 불과한데 비해 洞庭橘은 60%나 돼 溫州밀감은 洞庭橘의 변이종임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許교수 외에도 학계 일각에서는「三國時代 훨씬 이전부터 감귤을재배해 온 제주도가 감귤의 자생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내 놓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 동부에서 중국 중남부에 이르는 지역과 그 주변에 산재한 섬지방이 원산지로 알려져 있는 감귤은 약 2천만~3천만년전에 지구상에 태어나 진화를 거듭,지금의 감귤이 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원산지에서 각 지역으로 전파된 각종 원시 감귤들은 그 지역 풍토에 적응하면서 오랜 세월 유전형질상 변화를 거듭해 중국.한국.일본에서는 밀감류,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문단류(文旦,Pummelo),지중해 연안에서는 레먼.시트론(Citr on)등 고유 품종을 탄생시켰다는게 학계의 통설.
특히 콜럼부스의 美대륙 발견을 계기로 서인도제도에 도입된뒤 거의 야생상태로 방치됐던 문단.밀감등은 온난한 기후에서 자연교잡이 이뤄져 그레이프 프루트(Grape fruit).템플(Temple)등 많은 우량종으로 발전한 것으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 그러나 제주도 토종 감귤은 재배역사에 대한 기록 문헌이 없어 언제부터 재배가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高麗史誌』의「百濟 文周王 2년(476년)에 탐라에서 밀감을 헌상했다」는 기록으로 미뤄 三國時代 이전부터 재배된 건 확실 하다.
특히 일본의「古事記」등에는「垂仁朝(서기 70년쯤)의 명을 받아 신라 귀화인인 田道間守가 常世國(제주도로 추정)에서 非時香果(귤)를 구해 왔다」고 기록돼 있어 재배역사는 적어도 2천여년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 토종 감귤은 또 오랜 역사만큼이나 엄청난 시련을 겪어왔다. 감귤은 高麗.朝鮮朝때 이 지역의 대표적 진상품이었던 탓에관가의 수탈이 극심했고,때문에 감귤나무를 가진 사람은 아예 집을 버리고 달아나거나 집을 떠날 처지가 못되는 사람들은 독즙을감귤나무 뿌리에 쏟아 부어 나무를 고사시키기도 했 다는 것이다. 또 朝鮮시대에는 조공물량이 달리자 防護所를 두기도 했으며,감귤원 확대를 위해 노비들에게 당유자.당감자 각 8그루와 유감20그루,동정귤 10그루를 심으면 노비신분에서 벗어나게 해주기까지 했다.
***糖度.경제성 약점 그러나 이같은 토종감귤은 일제때부터 당도가 높고 경제성이 뛰어난 온주계통의 감귤이 도입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 겨우 1천여 그루가 남아 있는 정도다.
그나마도 토종 감귤의 藥性이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지방문화재로지정된 9그루 외에는 완전 멸종됐을 것이라는게 제주도민들의 주장이다. 예부터 한약재로 애용돼 오기도 한 토종감귤중 특히 지각.산귤.청귤의 껍질은 감기.위장병.담치료에 효능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토종의 껍질이 6백g 한근에 1만5천원선의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데도 물량이 절대 부족한 반면 수입 중국산이나 온주밀감은 약효가 현저히 떨어져 한근에 1천여원에 불과하다.
『東醫寶鑑』에도「귤 껍질은 가슴속의 열과 대장이 막힌 것을 풀며,부인의 유방염도 다스린다.또 담이 있는 기침과 위장병 등에 효험이 있다」며 감귤의 종류와 특성을 밝혀놨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병충해를 입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토종은 무공해 농법이 가능해 이를 활용할 경우 97년7월부터 전면 개방될 감귤시장 보호에 큰 몫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맛이 뛰어난 품종을 개량해 온주밀감을 능가하는 신품종을 만들어 낼 경우 90년부터 시작된 감귤 수출을 주도할 전략 상품으로 부각시킬 수도 있어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육종연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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