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 외환은행 인수 협상 이례적 공개 속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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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0일 세계 2위의 금융그룹인 HSBC는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국제 관례에도 안 맞을 정도로 이례적이었다. HSBC는 이날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상장을 유지하고 ▶외환은행 이름을 계속 사용하며 ▶고용 승계와 고용 보장을 하겠다며 ‘청사진’을 미리 제시했다. 외국계 금융사가 이처럼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거나 본계약을 하기도 전에 협상의 주요 안건을 밝힌 적은 거의 없었다. 철저한 보안이 인수합병(M&A)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5년 제일은행을 인수한 스탠다드차타드 은행(SCB)은 계약을 한 뒤에야 고용 보장 등 경영과 관련한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HSBC, 왜 이렇게 적극적인가=금융계에선 HSBC의 여론몰이로 해석한다. 한국 금융감독당국을 압박해 외환은행을 사들이겠다는 전략이란 것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외환은행 헐값매각 논란에 대한 법원 판결 전까지는 외환은행 매각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바 있다.

보통 외국계 은행은 금융사 M&A를 진전시키기 전에 금융감독당국의 의사를 타진한 뒤 이를 언론에 흘리는 과정을 거친다. 금융감독당국이 승인을 거부하면 M&A 자체가 무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HSBC는 정반대. MOU를 교환하기도 전에 세계 언론에 외환은행 인수 의사를 공개한 것이다.

◆이번엔 진짜 사들일까=HSBC는 한국의 은행 M&A 시장에서 ‘단골손님’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은행 매물이 나올 때마다 이름이 빠진 적이 없다. 하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막판까지 간 경우는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가격 차로 물러서곤 했다. 이 때문에 한국 감독당국에 ‘미운 털’이 박히기도 했다.

1998년에 제일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99년에는 금융감독위원회와 서울은행 인수에 합의해 MOU까지 교환했으나 ‘가격 차’로 발을 뺐다. 2005년에 다시 한 번 제일은행 인수전에 참여해 최종 협상까지 갔으나 뒤늦게 뛰어든 SCB가 가격을 올리자 포기했다. HSBC 관계자는 “M&A 대상 기업에 대해 자체적으로 적정 인수 가격 범위를 산출한다”며 “시장가격이 이 범위를 넘어서면 인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HSBC의 외환은행 인수 가능성은=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HSBC가 외환은행의 지배 지분을 인수하기 위해 조건부 계약을 할 각오가 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외환은행 인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다. 금융계 관계자는 “한국 영업을 키우려는 HSBC로선 마지막 은행 매물이 될지 모를 외환은행마저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HSBC는 법원의 재판 결과와 외환은행 인수 승인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으며 대주주 적격성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감독당국의 입장이다. 감독당국은 법원 판결 이후 외환은행 재매각 관련 사안을 심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취임 한 달도 되지 않은 김용덕 금융감독위원장이 이런 입장을 뒤집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길게는 외환은행 매각이 마무리되는 데 3년 넘게 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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