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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편견 지닌 ‘개콘’ 교사 … 등잔 밑 학생도 껴안았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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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봉숭아학당은 지역사회주민을 위한 ‘열린 학교’였다. 동네 이장부터 거리의 비보이(댄서 킴), 옌볜 총각, 성적 소수자(황 마담)까지 학생의 신분이 다양했다. 한동안 개인비서(알프레도)까지 거느린 영국 유학생(세바스찬)도 있었지만 대체로 정규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소외계층이 주류였다.

 입시 압박에 짓눌린 교실이 통제된 학습공간인 데 반해 코미디에서 상정된 교실은 학생들의 개성과 기량이 마음껏 분출되는 자율공간이다. 교사는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학생들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개성적으로 의사를 표현했다. 눈에 띄는 차이는 있었지만 눈에 거슬리는 차별은 없었다. 교사는 친구 같았고, 교실은 놀이터 같았다.

 봉숭아학당이 폐교된 후 ‘개콘’에 한동안 교실이 보이지 않았는데 근래 들어 단출하지만 활기찬 수업이 재개됐다. 경쾌한 음악-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컴 온 오버(Come on over)’-와 함께 등장하는 까다로운 변 선생(변기수)은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과목 상치’(전공 외에 비전공까지 두 가지 이상의 과목을 가르침) 교사다. 영어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국어·영어부터 체육·음악까지 모두 혼자서 담당한다.

 변 선생이 가르치는 교실엔 학생이 모두 네 명인데 실제로 의자에 앉아있는 학생은 두 명(송병철·김기열)뿐이다. 한 명(이종훈)은 바닥에 앉아있고 또 다른 한 명(권재관)은 늘 교실 밖을 맴돈다. 봉숭아학당과의 차이는 교복이 아니라 교사의 편견에서 종종 드러난다.

 바닥에 앉아있는 학생은 일종의 투명인간이다. 교사도, 같은 반 학생도 이 투명인간 학생을 보지 못한다. 교장도 이사장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이 학생의 어떤 행동에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실상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못 본 척할 따름이다.

 ‘까다로운 변 선생’의 에피소드는 우리 교육이 저지르고 있는 ‘범죄의 재구성’이다. ‘세상에 저런 교실이 어디 있느냐’고 대놓고 묻지 않는 건 코미디의 역할이 뒤틀린 세상을 가볍게 꾸짖는 데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코미디의 교훈은 영화 ‘여고괴담’의 주제와 비슷하다. 끔찍한 얘기지만 우리나라 교실에는 ‘죽은’ 학생들이 많이 다닌다. 그들은 살아 움직이지만 산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교육의 목표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강제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잠재된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교실 코미디는 반어적으로 증언한다. 무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신여김을 당한 학생들은 결국 사회에 나와 그 존재감을 엉뚱한 상황에서 드러내기도 한다.

 등잔 밑이 밝을 것 같은데 실은 가장 어둡다. 등잔 밑에서 외로워하는 가엾은 영혼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로운 삶은 외로운 삶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는 여정이다.

OBS 경인TV 사장·전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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