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눈돌려 일어선 노키아-휴대폰업계 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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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통신산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오랜 지혜는「클수록 좋다」는 것이었다.엄청난 개발투자,국가 독점을 위한 제휴관계에 쏟아부어야 할 자금.
그러나 요즘 변화의 속도는 이런 전통적인 장점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유럽 휴대폰 시장에선 1위,美國에서는 모토로라에 이어 2위.
이 정도 성적이면 미국아니면 일본,못해도(?)독일이나 英.佛정도의 기업을 떠올리는게 당연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유럽의「산간벽지」라고 할 수 있는 핀란드의 전자통신업체 노키아(Nokia)다.
골리앗처럼 거대한 지멘스. 알카텔을 당당히 누르고 연간 매출22억5천만달러로 세계 12위의 통신산업체,휴대폰분야에서 유럽1위,미국 2위의 실적을 올린 회사다.
이익률이 10~15%면 최선이라는 통신사업에서 노키아는 지난해 20%의 매출이익을 올려 업계 정상을 차지했다.
설립 1백29년의 노키아가 애당초 통신과 관련된 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노키아가 최근 관심의 표적이 되는 것도 단순히 이같은 성적 때문이라기보다 날렵한 변신과 정확한 선택으로 벼랑끝에서 起死回生,군웅이 할거하는 휴대폰시장을 단숨에 휘어잡은 놀라운 전략에 있다.
노키아가 휴대폰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81년부터다.산악지대가 많고 인구가 분산돼있는 핀란드는 휴대폰의 보급에 최적지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당시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경공업.가전사업에 매달려 휴대폰을 부수사업정도로만 방치해뒀다.
그후 80년대말에는 獨逸에서 컴퓨터.컬러TV 생산에 손댔다 막대한 손실을 보고 한계기업으로까지 몰렸다.89년에는 카이라모前사장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雪上加霜으로 안정적인 수출시장이던 蘇聯이 무너지자 노키아의 경공업제품은 창고에 쌓이게 됐다.국내경기도 침체돼 노키아에는 비상구가 없는 듯했다.91,92년 2년동안 적자액은 무려 2억달러에 달했다.노키아가 극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92년국제감각이 뛰어난 조르마 올릴라가 사장으로 취임해 휴대폰을 주력사업으로 밀고나가면서부터였다.
올릴라는 취임직후『장차 죽느냐 사느냐의 승부를 걸 수 있는 분야는 고부가가치 사업인 전자통신분야뿐』이라며 회사의 모든 시스팀을 휴대폰 생산쪽으로 바꿔놓았다.
또 이때부터 노키아의 국제화전략이 시작됐다.개인수요가 많아도휴대폰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고정납품처가 없는 내수시장에서는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처음부터 수출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노키아에는 보약이 됐다.풍부한 내수시장을 지닌 美國의 IBM이나 디지틀 이컵먼트(DEC)와 달리 노키아는 국제시장에서 이기지 못하면 끝장이라는 각오로 덤벼들었다.스스로 살벌한 국제경쟁에 뛰어들어 실전경험을 쌓은 것이다.
조직은 최대한 가볍게 유지하려고 애썼다.지멘스등 경쟁사가 수직계열화를 이뤄 부품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데 반해 노키아는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만큼 외부에서 사들인다.조직에 군살이 붙을까염려해서다.
올릴라사장은『90년대에는 규모보다 스피드가 중요하다』며 가벼운 조직.신속한 의사결정을 노키아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南潤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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