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실무접촉 6차회담 무산/북,「메뉴」 바꿔가며 시간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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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개항 철회 대신 「공동합의문」 요구/난항 부각해 「미­북한 대화」 구도유도
12일 열린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6차 접촉이 결렬,「3월21일 이전 특사교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해져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북한과 미국의 합의가 상당한 차질을 빚게됐다.
다만 북한이 이날 접촉에서 특사교환을 위한 조건을 절충하는 태도로 나와 원점에서 맴돌던 논의가 약간 전진됐으나 특사교환이 실현된다 해도 21일 이후가 될 수 밖에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6차 접촉에서 『4개 요구사항을 특사교환에서 논의할 수 있다』면서 전제조건을 철회했고,합의서 수정안 논의에도 응해 28개 항목 가운데 쟁점은 ▲특사의 임무 ▲방문순서 ▲체류일정의 3개로 압축됐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특사교환 의지를 담은 「공동합의문」을 발표할 것을 제의,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면서 지연작전으로 나왔다.
남측 수석대표 송영대 통일원차관은 접촉후 『북한이 그동안 4개 전제조건이 해결돼야 절차토의가 가능하다고 한만큼 이날 이를 거론하지 않고 절차토의에 응한 것은 전진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21일이전 특사교환 실현은 어렵게 됐고 이에 따라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 연기는 불가피하게 됐다.
남측안은 합의서 채택후 10일내,북측안은 합의서 채택후 15일내에 특사를 교환키로 돼 있어 양측이 극적으로 입장전환을 하지 않는한 21일 이전 특사교환은 시간이 급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4일부터 대통령의 방일과 방중이 예정되어 있어 특사교환이 실현돼도 그 이후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특사가 교환돼도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이날 4개 요구조건의 철회를 표명했으나 이들은 모두 특사의 임무에 변형돼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5차접촉에서 제시한 요구 가운데 「민족자주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문제」에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중지 ▲국제공조체제 포기 ▲핵전쟁 연습 중지 등이 포함될 수 있어 전제 철회에도 불구하고 특사가 교환돼도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이 「3월1일 실무접촉재개」 합의를 「전통문을 통한 접촉합의」로 간주해 교묘하게 합의를 위반했고,이후 접촉에서도 줄곧 4개 요구사항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21일 이전 특사교환 불가능은 이미 예상됐었다.
북한은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전 특사교환」이라는 명문화되지 않은 합의에 대한 한미 공조의지를 줄곧 시험했고 그 과정에서 「될 수 있으면 특사교환을 안하고 한다고 해도 21일을 넘긴다」는 태도로 나왔다. 그럼에도 북한이 6차 접촉에서 태도를 변화시킨 것은 「21일 이전교환」이 사실상 무산돼 전술적인 목표를 달성했고 동시에 특사교환에 대한 한미 공조의 압력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가 유엔의 북한 대표부에 「특사교환이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했고,이회창총리와 갈루치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 점을 재확인한 것 등 모두가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당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특사교환을 위한 접촉의 진도가 지지부진 한데는 북한의 진짜 의도를 읽어내지 못한 한미 당국의 판단부족이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미국과의 3단계 괴위급회담에 연연하고 있어 3월21일이라는 시한을 지킬 것」이라는 판단에 집착에 다른 가능성은 생각지 않는 전략부재를 노출시켰다.
북한이 어렵게 얻어낸 「3월21일 3단계회담」이라는 합의 무산 가능성을 의식하면서도 협상 진도를 지지부진하게 만드는 이유는 명백하다.
핵문제 협상은 미국과의 직접접촉을 통해 해결하고 남북특사교환은 북·미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수용으로 핵문제 해결 의지가 있다는 점을 국제적으로 과시하는 한편 핵투명성을 확인시켜 미국이 북한과의 직접협상에서 미국이 발을 뺄 구실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남한이 요구하는 특사교환 문제를 장애물로 부각시켜 북한과의 직접협상이라는 유혹을 느끼고 있는 미국과 한국간의 갈등을 증폭시키겠다는 의도도 있다는 분석이다.<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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