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배수펌프 과열로 발화/광케이블 화인 추정해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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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센서 이상작동 배수끝난뒤 계속 헛돌아/방열·방화 안되는 광케이블에 옮겨붙어
지하통신케이블 화재사고는 지금까지 현장감식 결과로 보아 수중배수펌프에 전원을 공급하는 자동배전반에서 일어난 불꽃이 경보장치가 없고 피복이 낡아 화재에 무방비상태인 광케이블에 점화돼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직구아래 30m에 설치된 5개의 수중펌프는 지표로부터 흘러든 물과 지하수 등이 습기에 민감한 광케이블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수위를 감지하는 센서에 의해 자동제어되고 있다.
통신구쪽으로 물이 흘러들어갈 만큼 수위가 높아지면 센서가 이를 자동감지,배전반이 펌프를 작동시키고 물이 빠지면 펌프는 자동으로 꺼지게 된다.
화재현장을 조사한 감식반에 따르면 배전반과 윗부분의 광케이블은 전소됐으나 아랫부분의 케이블은 거의 타지 않았고 단지 펌프와의 연결전선이 4m가량 탄 상태였다.
따라서 감식전문가들은 배전반의 이상으로 일어난 스파크가 불에 약한 광케이블의 피복에 옮겨붙어 환풍기 가동으로 기류가 흐르는 방향인 위쪽으로 불이 번져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감식전문가들은 스파크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사고가 난 통신구내에는 항상 습기·먼지가 많아 배선의 절연상태가 불량하고 전원공급장치 등이 들어있는 배전반의 전선과 전기장치가 노후해 어느 부분에선가 접속불량에 의한 누전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하철의 심한 진동으로 전기장치에 이상이 생겨 펌프가 과열되는 바람에 전원장치 등의 배선에 스파크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작동시험결과 이들 펌프중 3개가 고장나 있는 것이 확인됐으며 한국통신 관리직원 강영구씨(48)도 경찰에서 『사고직전 펌프의 계기판에 이상경보가 나타났었다』고 진술했다.
한국통신 직원들은 물위에 떠서 수위를 감지하는 센서가 주위환경에 워낙 민감해 심한 지하철 진동에 의해 잘못 작동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수십 ㎞에 이르는 케이블 구간을 단지 직원 3명이 관리해야 하는 바람에 평소 이상이 발견되더라도 즉각 지하로 내려가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등 허점이 많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정황으로 볼때 고장난 펌프들이 센서의 이상작동으로 배수가 끝난 상태에서도 계속 헛도는 「무부하 가동」을 해 펌프가 과열됐고 노후된 배전반의 배선이 이를 견디지 못해 스파크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배전반에서 스파크에 의해 일어난 가벼운 불꽃이 쉽게 광케이블에 옮겨붙을 수 있었던 것은 85년 설치후 한번도 교체하지 않은 테이블의 피복이 낡았고 방열·방화재료를 쓰지 않아 불에 약한 상태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국 최악의 정보통신 마비사태를 빚은 이번 사건은 배수펌프와 광케이블 피복 등에 대한 관리상의 허점으로 일어난 사고로 「대형사고 원인은 사소한 관리 문제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시켜준 셈이다.<예영준기자>
◎배전반이란/전력분배·제어장치
이번 사고의 주역으로 꼽히고 있는 배전반은 일반적으로 많은 방이 있는 큰 빌딩 등에서 각 방의 전력을 분배·배선하는 장치로 각 방의 전력을 개폐하고 과열 등 이상작동시 자동으로 전력을 끊어주거나 경보를 울려주는 역할을 한다. 사고현장의 배전반도 지하통신구에 물이 차면 자동으로 배수를 시키는 5대의 배수펌프에 전력을 분배·제어해주는 장치로 개폐기·차단기·퓨즈 및 만수여부를 체크하는 센서,이상작동시 경보해주는 감지기 등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화재경보장치는 없다.<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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