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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호모 영화감독 데릭 자만-결국 에이즈로 사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오랫동안 에이즈와 투병중이던 영국의 이단적인 영화감독 데릭 자만이 52세를 일기로 지난 21일 런던의 세인트 바톨로뮤 병원에서 숨을 거두자 영국.독일등에서 그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일고 있다.
그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어온 영화감독 켄 러셀,여배우 틸다스윈턴,평론가 토니 레인즈등 영국 영화인들은 그의 영화를 총괄하는 회고전을 3월 런던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서거 소식을 들은 베를린영화제에선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켄 맥멀런의 다큐멘터리영화 『우리 모두 모였다네,존』(There We Are,John)을 특별상영하는등 업적을 기리기도 했다.자만은 동성연애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한 파격적인 형식의 영화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다른 게이 예술가들과 달리 그는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공공연히 선언하고『게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된다』는 주장을 폈었다.『동성연애를 변태로 생각하는 사람의 관념을 탈신비화시키는 것이 나의 예술활동의 목표』라고 그는 말한 바 있 다.『동성연애도 이성연애만큼 정상적인 인간활동의 일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그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극찬과 혐오라는 극단적인 반응으로 갈리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그의 비타협적인 자세에 연유한다.보수적인 영국의 평단에서 그는「성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온한 인물」로 오랫동안 낙인찍혀야만 했다.
영국의 명문인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후 화가로 활동하던 그가영화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72년 켄 러셀의 영화『악마들』에세트 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부터.
회화적인 아이디어와 시적 사고를 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영화를 이해한 그는 8㎜ 카메라로 실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75년에 발표한 영화『세바스찬』으로 평자들의 주목을 끌기시작한 그는 86년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동성연애자였던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담은 『카라바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87년 자신이 HIV(에이즈 바이러스)보유자임을 밝힌 그는 켄트주의 던지니스에 은둔처를 마련,런던을 떠났다.『카라바조』이후에도『영국의 종말』『전쟁 레퀴엠』등 문제작을 계속 발표,영국을 대표하는 영화작가로 인정받은 그의 영화는 형식 에 있어서도 놀랄만큼 독특하다.회화의 콜라주를 그대로 빌려온듯한 시적 이미지의 현란한 병치는 연극적인 전통이 강한 영국 영화에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베를린=林載喆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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