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명감독 타르코프스키 영화 비디오로 국내 첫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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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86년 타계한 타르코프스키는 생전에「영화사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소련 영화감독들이 마르크스사상을 도식적으로 적용하는 영화를 양산해온데 비해 타르코프스키는 시간과 기억이란 문제에 끈질기게 집착해 놀라운 영상세계를 펼쳐보였다.
서구 비평가들이 특히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70년대 이후 서구영화가 처한 일종의 한계상황에 대해 그의 영화가 하나의 돌파구를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이후의 서구영화들은 할리우드영화에 대항하는 방법론을찾는데 치중한 결과 오히려 리얼리티가 부실해지는 우를 범했다.
타르코프스키는 기억과 환영을 환기시키는 영화 고유의 능력을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이「현실의 부재」를 극복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소련 당국의 심한 압력에 시달인 것으로유명하다.그의 영화는 부르좌적이란 비판을 받아야했고 상영 금지도 여러번 당했다.
이번에 출시된『안드레이 루블료프』는 66년에 만든 타르코프스키의 두번째 장편영화로 15세기초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아이콘(聖像)화가의 생애를 그린 영화다.
격동의 시대에서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이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예술관이 잘 나타나 있는 걸작으로손꼽힌다.상영시간이 3시간을 넘는 이 대작은 이 예술가의 삶을연대기적으로 추적하기보다 그의 삶의 중요대목을 7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15세기 러시아를 유랑하는 루블료프는 광대들이 벌이는 광란의축제를 보기도 하고,타타르족에 의한 양민 학살을 목격하기도 한다.민중들의 고난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그는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자신의 입장에 의문을 갖는다.예술가는 결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벗어날 수 없지만 그러나 그 예술의 역사성 또한 강요된 것이어선 안된다는 타르코프스키의 인식은 당시의 소련당국을 충분히 불안하게 할만한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신비주의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결국 이 영화는 4년간 소련내에서 공개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다.69년칸영화제에 등장한 이 영화는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하면서 타르코프스키의 존재를 서방세계에 알려주었다.
타르코프스키가 72년에 만든『솔라리스』는 소련영화로선 드문 SF영화다.그러나 이 영화도 할리우드 SF영화에 익숙한 관객들로선 이해하기 쉽지않은 세계가 전개된다.폴란드의 SF작가 스타니슬라프 렘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기억 과 사랑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이색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
80년에 만든『안내자』는 운석이 떨어진 장소에 대한 탐색을 그린 영화다.금지구역으로 선포된 이 지역에 이상한 현상이 잇따라 발생한다.이 금지구역의 끝에는 인간의 소망을 들어준다는 희망의 방이 존재한다.일단의 과학자들은 위험을 무릅 쓰고 이 희망의 방을 찾아나선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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