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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쓰나미' 를 피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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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세상 살기가 갈수록 어려운 것 같다. 그런 느낌은 지난주 더 강했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게,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공연히 죄인으로 몰리는 것일 게다. 그런데 지난주 우리나라는 정말 억울하게 당했다.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쓰나미처럼 찾아왔다. 주가가 폭락했고 환율이 급등했다. 사람들은 경제위기를 다시 겪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경제부총리란 사람조차 엔캐리 자금(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다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한 돈)이 회수되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방정을 떨 정도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라 보고 놀란 적이 있는 국민 아닌가. 솥뚜껑만 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사람은 기자만이 아닐 게다.

그러면서 공연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잘못해서 일어난 게 아니다. 지난번 외환위기야 우리 잘못이 컸다. 그래서 참담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별반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우리 때문이 아니라 미국 때문에 일어났다. 미국의 금융기관과 금융당국이 잘못해 생긴 일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줬고, 그렇게 빌려준 돈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감독이 허술했다. 세계 최강의 금융대국이라는 미국도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걸 확인한 건 위안거리였지만, 그러나 그렇게 위안 삼기엔 충격이 너무 컸다. 저네들이 잘못했다면 피해 역시 저네들만 입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애먼 우리까지 당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의 잘못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아시아 등도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뻔하다. 세계화와 투기자본 때문이다. 막대한 투기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판치는 세상이 된 지 십수 년이 됐다. 이들이 한번 쓸고 지나가면 생산 기반과 잠재력은 무참히 파괴되고,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 국가 부도 사태로 변한다는 건 외환위기 때 이미 경험했다. 이들 앞에서는 개별 국가의 경제정책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을 것이다. 스스로 통화를 풀고 금리를 내렸어도 우리 금융시장이 진정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는 늘 '위기가 언제 올까'라는 불안과 근심으로 시달릴 것이고 경제시스템은 항상 불안정하고 불안전할 것이다. 세계화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인 데다, 우리는 이미 세계화라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해도 위기가 오지만, 남이 잘못해도 위기가 오는 '만성적 위기구조'에서 허덕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불안과 근심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조금 줄일 수는 있는데, 그중 하나가 투기자본에 대한 감독과 규제의 강화다. 대표적인 투기자본가인 조지 소로스조차 이 점을 강조한 터다. 이른바 '금융 프로'들에게 금융시장을 맡기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이번 사태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가 어설픈 사람들에게 금융시장을 맡겨선 안 된다는 것 같다. 시장의 현실을 잘 아는 '금융 선수'들이 금융 책임자가 돼야 한다.

미국 중심의 경제체제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도 장기 숙제 중 하나다. 중국과 일본 등을 합쳐 아시아 경제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우리 경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이처럼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 건 분명하다.

김영욱 경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