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칼럼] 노무현 코드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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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책이 스무권 가까이나 출판됐다. 대부분 선거 때 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선거 6개월이 지나 발간된 책이 한권 있다. '노무현 코드의 반란'(김헌식 지음).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면, "대중적인 인기를 추구해야 했던 노무현은 이제 그 문화적인 이미지들을 거둬야 한다. 그는 법과 제도를 통해 현실적인 수단을 추구할 것이다. …그는 서민과 빈자의 대변자였고, 이제 수구세력과 맞서야 하는 모두의 바람을 지니고 청와대에 들어선 전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코드로 보면 노무현은 실패한다. …노무현을 지지한다면 그에 대한 문화적 코드를 줄이고 제도적인 코드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무현의 잔치는 영원히 끝날 것이다."

*** 국민연금정책이 달라진 까닭

저자 김헌식은 이 책에서 노무현은 이제 운동가가 아니라 대통령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타협과 절충이 불가피한 그에게 무작정 비판하거나 실망하지 말 것을 지지자들에게 주문한다. 그를 정책과 제도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라크 파병이나 전교조 문제, 교육개방 등의 정책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노무현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든지, 변절자로 모는 것은 개혁을 거부하는 수구세력만 도와주는 이적행위임을 설파하고 있다.

盧대통령 자신도 취임한 지 얼마 안 돼서 "보수파의 반대보다도 나를 지지해 왔던 진보세력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 앞의 저자와 盧대통령은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었나 보다. 사실 의리로 봐서도 지지자들에 대한 약속이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더구나 감정적인 성격에 고집 센 盧대통령이니 그 고충에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盧대통령은 그동안 제법 많이 바뀌었다. 잘못됐던 생각을 바로잡은 것도 있을 테고, 현실적 한계 탓에 타협한 경우도 적지 않았으리라. 국민연금은 대선 TV토론에 나와 했던 이야기를 1백80도 뒤집었고, 사패산 터널 문제도 우여곡절 끝에 백지화 약속을 백지화했고, 인수위 구성 때부터 시작된 이른바 코드 인사 역시 1년 사이에 적지 않이 수정했다. 노동문제에 대해서도 '노사 간에 세력균형론이 어떻고'하던 초장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미국에 대한 생각도 "일도 없이 미국엔 왜 가느냐"고 했던 때와는 판이해졌다.

왜 달라지고 있는 걸까.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정책과 제도의 틀 속에서 대통령 자신이 별의별 고뇌를 다 겪었을 것이다. 성질대로 하자면 확 뒤집고 싶었던 충동이 수도 없었겠으나 '대통령이 되고 보니 그게 아니네' 하는 깨달음 또한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변화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쉽게 읽힌다. 지난해 말 TV인터뷰에서만 해도 "경제는 좋-습니다"라고 큰소리쳤던 것과는 딴판으로 회견문이 온통 경제이야기였다.

올해부터 기대되는 변화의 가속은 盧대통령과 그의 지지세력 간의 관계를 더욱 난처하게 할지 모른다. 이른바 '노무현 코드의 반란'의 바람이 거세질 공산이 크다. 그중에도 노동계의 '반란'이 당장 목전에 다가서 있다. 어차피 노사 간에 극적인 대타협이 없는 한 올해는 정면충돌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를 치고 나선 셈이 됐다.

*** 노동계 '반란'이 최대 당면과제

노동계에 대한 자성을 강하게 촉구하고, 임금억제 가이드 라인까지 제시했다. 본심은 결코 노동계를 서운케 하고 싶지 않겠지만 일자리가 팍팍 줄고, 기업들이 계속 투자를 외면하는 경제 현실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 아니겠나.

盧대통령으로선 지금도 속으론 "나는 여전히 노동자 편입니다"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게 바로 노무현 코드였다. 그러나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줄고, 청년실업이 심각해지고 보니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리하여 대통령도 하는 수 없이 자존심을 꺾고 코드 변화에 나선 것이다. 이처럼 딱한 상황에 빠진 대통령을 두고 지지자들이 돕지는 못할망정 '반란'을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자칫하면 책의 우려처럼 대통령이 지지자들 손에 의해 망쳐질지 모른다.

이장규 경제전문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