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에 빼앗긴 남편… 심장병 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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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열심히 살아보려 애썼는데 왜 이렇게 몹쓸 일이 겹치는건지….』
뺑소니 차에 남편을 잃고 하나밖에 없는 어린 딸마저 심장판막증으로 병상에 누운 유경애씨(34·서울 성동구 중곡4동)는 허공만 바라보며 목이 멨다. 87년 결혼,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단란했던 유씩 가정의 꿈과 사랑이 깨어진 것은 가장인 양봉민씨(34)가 지난해 12월 중순 뺑소니차에 치여 숨지면서였다.
남편 양씨는 고교졸업후 대학에도 가지 않고 사업으로 성공을 이루겠다면서 만화영화제작에 매달렸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빚만 지고 말았다.
더욱이 결혼 1년뒤 낳은 딸 나래(6)가 선천성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아 이들 부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나래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서로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성탄절 이튿날인 지난해 12월26일 오후 11시10분쯤 서울 송파경찰서 부근에서 귀가길의 남편 양씨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
회사일이 끝나 곧 귀가하겠다는 전화가 마지막이었고 목격자조차 없었다. 몸을 조금만 심하게 움직여도 얼굴이 새파래지고 숨을 몰아쉬는 나래를 안고 남편을 묻으면서 유씨는 처음으로 세상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두」 예방주사를 맞히기 위해 며칠전 나래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애가 이 지경이 되도록 놔뒀느냐』는 의사의 질책을 들으면서 유씨는 죄책감을 못이겨 눈물만 흘렸다.
한국심장병재단을 찾아가 보기도 했으나 신청한 사람이 너무 많아 수술 차례는 기약할 수 없었다.
『내달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나래가 활짝 웃을 수 있도록 우울한 모습을 감추고 힘을 내야지요.』
눈물을 감추며 억지웃음을 짓는 엄마의 목을 휘감으며 집안의 불행을 알리 없는 나래는 『아빠 언제 오느냐』며 보채고 있었다.<이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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