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 전용일, 52년 만에 퇴역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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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동포 여러분,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찾아왔습네다. 참 기쁩네다."

북한을 탈출한 국군포로 전용일(73)씨가 19일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을 다시 밟았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2월 군 입대 후 52년1개월 만이다.

全씨는 이날 오후 한국전 당시 소속돼 있던 중부전선 육군 ○○사단에서 퇴역식을 하고 동생 수일(65)씨 등 가족과 함께 오후 11시40분쯤 고향인 경북 영천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도착한 全씨는 집안 어른인 큰형수 김손연(82.신령면 완전리)씨 집에 먼저 들렀다. 金씨 집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던 추영호 신령면장 등 지역 유지들은 全씨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며 "환영합니다"라고 귀향을 반겼다. 이 자리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과 공무원 1백여명이 모여 손뼉을 치며 全씨의 귀향을 축하했다.

형수 집을 나온 全씨는 4km 정도 떨어진 화산면 유성리 동생 수일씨 집으로 가 첫 밤을 보냈다. 수일씨는 "우리집에서 난방이 가장 잘 되는 아래채에 형님의 거처를 마련했다"며 "50년 만에 형님을 집으로 모시니 감격스럽다. 못다한 정을 나누며 여생을 같이 살겠다"고 다짐했다.

全씨는 20일 오전 신령면 고향 야산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 세배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全씨는 퇴역 신고를 위해 19일 오후 2시쯤 자신이 속했던 ○○부대를 찾았다. 군복을 입은 그의 양 어깨에선 금빛 하사관 계급장이 빛났다.

全씨는 건물 밖으로 마중나온 사단장 허평환 소장을 보자 "필승"이라고 외쳤고, 許소장은 "늠름하고 건강한 모습이 역시 ○○사단 용사답습니다"며 全씨의 어깨를 감쌌다.

이어 全씨는 사령관실에서 퇴역식을 했다. 全씨는 許소장에게 "필승, 신고합니다. 하사 전용일은 이천공사(2004)년 1월 19일 퇴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라고 했고, 신고를 받은 사단장이 답례한 손을 내리자마자 全씨는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이어 "이야, 이야, 이야…"소리를 지르며 許소장을 끌어안았다. 全씨는 "내 사랑하는 조국, 내 사랑하는 ○○사단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라며 울먹었다.

연병장으로 자리를 옮긴 全씨는 이상훈 재항군인회장에게서 향군회원증과 공로휘장을, 후배 부대원들과 가족들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이어 군악대가 군가 '전선을 간다'를 연주하는 가운데 지프에 올라 후배들을 열병했다.

이 자리에는 全씨 가족들을 비롯, 한국전쟁 때 생사를 같이했던 19연대 생존 전우 18명과 지역 기관장 등이 참석했다. 全씨 일행은 영천시청이 제공한 버스 편으로 귀향길에 올랐다.

중부전선=이찬호 기자, 영천=홍권삼 기자<kabear@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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