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 화가 변신 강현두씨 개인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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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출신에 방송학자라 영상연출하듯 그림을 그리게 된다”고 말하는 강현두 교수. [사진=강정현 기자]

“이제는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 살 수는 없는 시대죠. 평균수명 연장으로 정년 이후에도 20~30년씩 삶이 남아 있어요. 단지 소일거리, 취미생활이 아니라 또 다른 일, 직업, 인생계획이 필요한 첫 세대입니다. 제가 그림에 도전한 것도 이처럼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지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강현두 명예교수(70)가 화가로 변신했다. 28일~9월2일 서울 프레스센터 서울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다. ‘수채화 작품전-지구촌 풍경기행’이다. 화가로의 전업을 꿈꾸며 63세인 7년 전 처음 붓을 잡은 후 두 번째 결실이다. 2002년 정년퇴임하고 그 이듬해부터 유럽·아프리카·아시아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스케치한 풍경과 정물 등 45점을 출품했다.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한 화풍이다.

강 교수는 정년 2년 전인 2000년, 처음 화가의 뜻을 품었다. 새로운 취미생활 정도가 아니라 화가로서의 새 삶을 꿈꿨다. “30여년을 사회과학자로 살았으니 앞으로는 전혀 새로운 일을 해보자 싶었죠.”

하필 미술을 택하게 된 것은, 1960년대 미국 보스턴대 유학시절 미국 공영방송인 PBS의 미술 다큐 제작에 참여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일제 식민시대,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자란 세대라 미술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죠. 당시 서양 명화들을 소개하는 다큐를 제작하면서 처음 미술의 맛을 알게 됐어요. 그때 마음 한구석에 그림에 대한 열망이 싹튼 거 같아요.”

마음을 정하자마자 예술의전당 ‘미술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인 그는 당연히 최고령 학생. 수강생들은 처음 그를 학생 아닌 강사화가로 오해하기도 했다. 생애 처음 잡아보는 붓. 수강생의 대부분이 젊은 여성인 반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울대 교수라는 신분은 물론 비밀에 붙였다. 그저 그림을 처음 배우는 늙은 학생을 자처했다.

“상당히 멋쩍은 일이 많았어요. 저처럼 나이 지긋한 남자 수강생들도 몇 있었는데 중간에 다 그만두더라구요. 뻔뻔하거나 얼굴이 두꺼워야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다, 마음을 다잡았죠.”(웃음)

막상 그림을 그려보니 평생을 바쳐온 커뮤니케이션 연구와 무관치 않더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림이야말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하나죠. 실제로 예전엔 회화가 저널리즘 역할을 했고요. 이번에 출품한 작품들도 저널리즘적 시각에서 여행지의 문화· 사회·역사를 담은 것들입니다.”

그는 교수가 되기 전 KBS PD로도 일했다. 1961년 국가공채로 뽑힌, 국내 방송PD 1호다. 그는 "PD출신이어선지 그림그리기를 TV 영상 연출하듯 하게 되더라”라며 “TV스크린이야 말로 10호 남짓한 캔버스”라고 털어놓았다.

"그림은 제작의 온 과정을 나 혼자서 하고 몰입과 에너지의 집중도가 높아요. 학문만큼이나 매력있습디다. 요즘엔 후배 교수들이 나한테 인생계획을 자문해 오기도 해요.” 강 교수의 부인은 MBC FM ‘영화음악실’로 일세를 풍미한 성우 김세원씨. "비록 아내가 그림을 그리지는 않지만, 스케치여행의 동행이자 내 그림의 첫 비평가 겸 관객으로 전시를 여는 데 절대적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shyang@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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