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핵사찰이후 거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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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핵사찰을 받겠다는 북한의 말 한마디에 국내에서는 정부가 구상중이라는 갖가지 대응책과 방안 등이 보도되고 있다.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남북한 특사교환,경제협력 조건완화 문제 등의 방법과 시기 등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해 사찰조건을 수락하겠다고 밝힌후 지난 닷새동안 쏟아져 나오는 그러한 보도들을 접하면서 정부의 대응방법과 능력에 미진한 부분은 없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닌지,너무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아닌지,관련부처간에 충분한 협의와 조율은 있었는지 하는 걱정들이다.
북한이 지난 1년간의 줄다리기 끝에 내놓은 것이라곤 이미 여섯차례나 사찰을 받아온 7개 시설을 한번 더 보여주겠다는 통고 한마디가 고작이다. 그래놓고도 정작 IAEA 사찰팀의 입북 비자발급은 지연시키고 있는 판이다. 비자발급 문제를 또다른 흥정거리로 삼으려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쪽에서는 북한 핵문제가 당장이라도 잘 풀리기라도 할 것 같은 시나리오를 가정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선 팀스피리트훈련 중단 문제만 해도 그렇다. 훈련중단은 IAEA의 사찰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면 실행에 옮기도록 되어있는 문제다. 그런데 IAEA의 사찰이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훈련중지 발표를 언제쯤 하겠다는 등,어떤 조건을 붙이겠다는 등의 소식이 앞질러 나오고 있다. 그것도 정부부처에 따라 발표시기를 다르게 보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며칠동안의 보도로는 북한에 대한 경제교류의 제한이 풀려 머지 않아 남북한 경제협력이 활기를 띠기라도 할 것 같은 생각을 갖게 한다. 북한공단에 대한 투자허용,기업인의 방북제한 완화 등 벌써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모두 북한핵 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한 전망들이기는 하지만 모두 우리쪽의 일방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다.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아예 핵문제와 관련없이 기존의 대북 경제협력 제한조치를 대폭 완화하고,그 구체적인 방안마련에 착수했다는 보도다. 물론 정부의 공식발표는 아니지만 이러한 보도가 나올 수 있는 분위기 자체를 우리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북핵정책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하는 극단적인 예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여러가지 방안과 가능성을 두고 검토하고,내부적으로 토론할 수 있고,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의 정책은 최종적으로 결정된뒤 공개되는 것이 옳다.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대북전략상으로 국가이익에 손실을 줄 뿐더러 국민에게 혼선을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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