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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억류 중인 19명 그들이 던져준 과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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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02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무장세력에 한국 봉사단원 23명이 납치된 지 19일로 한 달째입니다. 그새 두 명이 희생됐고, 두 명은 풀려났습니다. 아직 19명이 억류돼 있습니다. 석방 교섭은 진전을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아프간 정세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사회의 국제뉴스 보도를 떠올렸습니다. 강대국 중심이지요.

4강에 둘러싸인 나라 언론의 숙명인지 모릅니다. ‘절망의 땅’ 아프간 정세를 다룰 여유는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6년 전 아프간 권좌에서 축출된 탈레반이 부활해 올봄부터 반전의 대공세를 벌이고, 외국인 납치를 협상카드로 쓴다는 보도들이 이어졌어도 봉사단원들은 아프간으로 갔을까라고 자문해봤습니다. 더군다나 목적지 칸다하르는 과거나 지금이나 탈레반의 거점입니다. 보도와 별개일 수 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국제뉴스 창(窓)도 보다 넓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외국 언론까지는 아니라도 말입니다.

아프간은 기원전 이래 동양과 서양 문명의 교차로였습니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실크로드, 인도와 중앙아시아 간 상업 루트였지요. 근대에 들어서선 분쟁의 십자로였습니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가 남아시아의 패권을 다투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주무대였습니다. 전략적 요충이기 때문이지요. 아프간은 그 이래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미·소 냉전 초기 아프간 지도자들은 소련제 성냥으로 미제 담배에 불을 붙인다고 말하곤 했답니다.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엔 ‘30년 전쟁’에 들어갔습니다. 대소 항전과 내전에 이어 지금은 서방과 탈레반·알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 네트워크와의 전장입니다. 동쪽 접경 파키스탄, 서쪽 이란, 북쪽 러시아, 주둔국 미국과 파병한 나토군의 이해가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2차 그레이트 게임이지요. 탈레반은 그 틈을 헤집고 다시 게릴라로 돌아섰습니다. 납치에다 능수능란한 선전술을 갖춘 네오 탈레반으로 말입니다. 한국인 석방 협상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국제공헌 방식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 군이 아프간 재건·의료 지원을 넘어 안보지원 활동까지 했다면 아프간 정부가 우리의 요구조건을 완전히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대테러전은 미국의 시대정신만이 아닙니다. 아프간-파키스탄 접경 산악지대의 이슬람 과격 테러단체를 소탕하지 않는 한 세계는 테러와 납치로 얼룩질 가능성이 큽니다. 글로벌 시대에 그 대가는 엄청날 것입니다. 호주는 테러단체와의 50년 전쟁을 염두에 두고 700명을 파병했다고 합니다. 자유 세계의 표준에 맞춘 적극적 국제공헌은 무역 입국과 자국민 보호의 보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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