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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3호 26면

신동연 기자

중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한 고유의 체제를 창안해냈을까? 그렇다고 인정받기를 중국 지도부는 기대하는지 모른다. 중국 체제는 자유시장경제와 계몽전제주의(啓蒙專制主義) 간의 절묘한 균형을 찾았다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보다 경제적인 효율성을 더 중시하는 이들은 중국 지도부에 동조할지 모른다.

기 소르망 프랑스 문명 비평가

중국 경제가 성공한 이유는 기업가 정신·경쟁·자유무역·통화안정과 같은 자유시장경제의 기본 원칙들이 지켜졌기 때문이다. 이 원칙들은 보편적이다. 중국 고유의 것들이 아니다. 중국이 이 원칙들을 어겼을 때에는 호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편 비대한 공공부문이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으며 잘못된 금융관행이 부실 대출과 투기를 부추기고 있다. 준법정신이 미흡한 가운데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 보호되지 못하는 상황은 창의성의 발휘를 저해하고 있다. 소위 중국형 시장경제의 특징들은 중국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할 때 발견되는 ‘증상’일 뿐이다.

중국인 중에서 2억 명은 중산층 이상의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10억 명 이상은 세계 최악의 착취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은 아직 세계 최저 수준인 101위다. 국민의 불만은 심각하게 누적됐다. 특히 지방에서는 당에 대항하는 유혈 소요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식 경제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다.

중국의 정치제도도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공산당원 수는 6000만 명이나 되지만 국민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공산당원들은 대부분 도시 출신 고학력 남성이다. 여성 당원은 극소수다. 농민이나 노동자 출신은 사실상 없다고 할 정도다. 당은 ‘국민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안다’고 과신하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를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의하달(上意下達) 식으로 추진된 수많은 정책이 실패했다. 게다가 공산당은 정책 실행보다 화려한 정치적 제스처나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선호한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민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봉기밖에 없게 된다.

더 큰 문제는 권력승계다.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해 마오쩌둥(毛澤東)의 후계자들은 합리적인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다음 지도자도 계몽된 인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마오쩌둥 사후 공산당은 네 명의 계몽된 최고지도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지도자 선택 과정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내 파벌 간 갈등은 결과 예측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선거에 의한 것이 아니기에 중국의 질서 있는 승계 여부는 운에 달렸다. 행운이 앞으로도 중국 편이라면 당분간 현상유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산당은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중국 역사에서 내란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기억하는 중국인들은 무질서를 몹시 꺼린다. 당 지도부는 이러한 두려움을 활용하는 방법을 안다. 하지만 운과 마찬가지로 공포심도 변하는 것이다. 계몽적인 당의 독재도 영원할 수는 없다. 무엇으로 대체될 것인가? 군사독재? 대혼란? 자유민주주의도 가능하다.

중국이 자유 국가가 될 수 없는 문화적, 혹은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인들이 번영과 자유를 바란다는 사실을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이 계몽된 공산당 지배를 선호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허구다.

사실 중국에 대한 서구의 오해는 역사가 깊다. 17세기 중국을 여행한 예수회 신부들이 보내온 목격담은 유럽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으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언의 요지는 ‘중국인은 유럽인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중국에는 종교가 없고 자유의 개념이 없다. 중국인들은 ‘철인(哲人) 황제’에 의한 계몽전제주의 통치에 자연스레 기우는 경향이 있다 등등.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중국의 관료집단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 그는 유럽도 중국처럼 계몽된 계급이 다스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1960~70년대에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은 마오쩌둥의 영웅주의를 칭송했다. 오늘날 서구 기업인들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중국인의 기질과 맞지 않는다는 중국 공산당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서구가 할 일은 뭘까?

중국을 보이콧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중국과 무역뿐만 아니라 문화교류를 통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중국의 부흥은 불완전하지만 좋은 소식이다. 수억 명의 중국인들이 가난을 탈피하고 있다. 그 과정이 더딘 데다 무질서하지만 전체주의나 배고픔보다는 훨씬 낫다. 중국 제품을 수입하는 것도 서구 경제에 좋은 일이다. 서구의 생산성이 향상되도록 자극하고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산 저가품은 서구 사양산업의 붕괴를 촉진한다.

그러나 자유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창조적 파괴’다. 중국은 아직 가난한 나라다. 중국의 경제운영은 세련됐다고 할 수 없으며, 중국이 미국·유럽·일본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다. 현 시점에서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중국의 군은 현대화가 필요하며 외교력도 제한적이다. 중국엔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중국의 민주주의자들과 인권운동가들을 지원해야 한다. 옛 소련 시절에 했던 것처럼. 70~80년대에 서구는 소련과 교역하면서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했다. 중국을 다르게 대할 이유가 없다. 중국인들은 자유에 관심이 없다는 중국 지도부의 주장에 현혹되면 안 된다. 중국을 다스리는 공산당은 대표성이 없다. 목소리 큰 공산당이 하는 말만 들을 게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는 중국 민중의 목소리도 들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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