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선원 지광스님 "거짓 학력 진작 고백 못한 점 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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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 스님이 17일 학력을 속인 사실을 털어놓으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변선구 기자]


"죄스러울 뿐이다. 진심으로 참회한다."

지광 스님(57.속명 이정섭)은 '거짓 학력'을 밝히는 인터뷰 도중 수시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남김 없이 모든 걸 털어놓겠다"며 서재에서 학력 관련 서류까지 꺼내와 일일이 펼쳐 보였다. 오른손에 꼭 쥔 손수건은 계속 젖어 있었다.

-동국대(선학)와 서울대(종교학)에서 석사 학위도 받았다. 어떻게 가능했나.

"1998년 한국방송통신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002년 졸업했다. 그래서 학사 학위가 있었다. 그걸 동국대와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할 때 서류로 제출했다. 서류상으로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

-방통대는 신도들 몰래 다녔나.

"아니다. 가방을 들고 학교를 오갈 때마다 신도들이 '어딜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방통대에 간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서울대 중퇴'가 아쉬워 방통대를 다니는 걸로 생각했지 싶다."

-그렇다면 '서울대 출신 스님'이란 얘기는 왜 나왔나.

"처음에 신도 7명으로 능인선원의 문을 열었다. 이를 알게 된 신문사 후배 기자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선배를 도와준다며 신문 기사로 소개를 했다. 거기에 '서울대 공대 출신'이라고 나왔다. 그때부터 다들 그렇게 믿었다. 물론 나도 굳이 나서서 부인하진 않았다."

지광 스님의 '허위 학력'이 주는 충격파는 크다. 마음을 정화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성직자의 경우라 불교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능인선원은 그간 불교계에서 도심형 포교의 성공적 사례로 인정받아 왔다. 84년 7명으로 시작한 신도 수는 2007년 8월 현재 25만 명으로 늘었다. 국내 불교 포교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지광 스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명문대 출신 스님이 영어로 불경을 가르친다는 얘기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렇게 큰 짐이 될 줄은 몰랐다. '서울대 출신'이란 명패가 포교에도 적잖이 도움이 됐지 싶다. 결국 내가 뿌린 씨앗이다."

능인선원은 불교계 내부에도 견제 세력이 적잖이 있다.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간혹 다른 스님들이 '서울대 출신이면 대수냐'라고 한마디씩 던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자격지심을 느꼈다. 그런 물음에 대해 한마디도 대꾸를 못했다. 도저히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게 바로 양심의 가책이었지 싶다."

-주위에 '허위 학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나.

"있었다. 능인선원 간부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내놓지 않으면 언론에 알리겠다'는 협박도 있었다. 개인적인 욕심도 있을 거고, 능인선원을 견제하는 집단도 있었을 거라 본다. 최근에 책 '정진'을 출간하면서 그런 협박이 부쩍 늘었다."

-최근 출판간담회에서 '서울대 어느 학부를 나왔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때는 말끝을 흐렸다. 왜 그때 밝히지 않았나.

"그때 가슴이 철렁했다. 돌아와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돌이켜보니 그때가 기회였다.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라리 그 얘기를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지금도 간절하다. 더 일찍 밝히지 못한 걸 참회한다. 내 업보다."

지광 스님은 인터뷰 도중 학력에 대한 깊은 콤플렉스를 끄집어 냈다.

"서울고 재학 시절 성적이 꽤 좋았다. 친구들도 모두 서울대에 입학했다. 나도 어렵잖게 서울대에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고3 때 신장병 때문에 건강이 악화됐다.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결국 고졸 학력에 머물고 말았다. 그러다 한국일보 기자 채용 공고를 보고 기자가 됐다. 76년에 결혼, 아내와 아들도 보았다. 80년 '계엄 철폐'와 '검열 거부'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해직되기도 했다. 그는 수배를 당했고 계속 도망 다녔다. 가장 노릇은 제대로 할 수가 없어 81년 합의이혼을 했고, 이후 승려가 됐다고 밝혔다.

-앞으로 어쩔 계획인가.

"신도들을 만날 때마다 고백하고 참회하겠다. 학력 고백 때문에 해외에 나가거나, 장기간 숨어 있을 생각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법당으로 나가겠다."

그는 현재 부산 국제신문 회장직도 맡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것)'을 주제로 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백성호 기자<vangogh@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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