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4부] 겨울 (12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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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엄마가 난데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외할아버지도 둥빈의 반응이 우습다는 듯이 빙그레 웃음을 띠셨다. 그러자 제제가 나섰다.

“할아버지 저는 결혼했어요. 청혼반지 사는 데 게임 아이템을 얼마나 지출했는데요, 유유.”

우리 가족은 모두 어이없다는 듯이 제제를 바라보았다. 엄마가 제제의 머리를 가벼이 쥐어박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대체, 게임 아이템이 뭔지, 유유가 뭔지 알 수 없는 듯했지만 제제의 말에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는 자는 나를 깨웠다. 엄마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자 엄마가 내 침대맡에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지금 밴쿠버로 떠나 닷새 후에 돌아올 거야…. 수술 끝나면 할머니께 전화드리고 그리고 집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하거라. 막딸 아줌마랑 서저마가 계시겠지만 그래도 네가 맏이니까, 동생들을 부탁한다.”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 현관으로 엄마를 따라나갔다. 주차장에는 다니엘 아저씨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해외 여행할 때는 나나 서저마 아줌마가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엄마의 무거운 트렁크를 함께 끌고 가곤 했는데 다니엘 아저씨의 차를 보자 마음이 좀 놓였다.

“그리고 더 어려운 일 있거든 다니엘 아저씨와 상의하거라.”

엄마는 그렇게 밴쿠버로 떠났다.

엄마가 오래도록 집을 비운 동안 문제는 난데없이 제제에게서 터졌다. 엄마가 떠난 날, 학교에서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2교시를 채우고 돌아오니, 집이 텅 비어 있었던 거였다. 막딸 아줌마와 서저마 아줌마가 동네 대형 마트에라도 가셨나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막딸 아줌마였다.

“혹시 제제 집으로 왔니?”

“제제가요? 제제…, 학교 안 갔어요?”
 
내가 반문하자 막딸 아줌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학교에 안 갔대.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와서 서저마랑 나랑 지금 혹시나 동네 PC방을 뒤지고 있어. 아무래도 엄마가 아침에 용돈을 주고 간 걸로 그런 데 간 게 아닌가 싶어서.”
 
솔직히 황당했다. 물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마음이야 내가 안다. 그런데 요 어린 것이 어디서 그런 황당한 용기를 냈단 말일까.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제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필이면 엄마가 떠난 날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혹시 나쁜 놈이 우리 제제를….”
 
막딸 아줌마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듯이 울먹였다.

“아이, 그런 일은 아닐 거예요…. 좀만 기다려봅시다.”
 
서저마 아줌마가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막딸 아줌마를 달랬다.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막딸 아줌마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그래요? 거기 있어요? 알겠어요. 그냥 하게 놔두세요. 제가 지금 데리러 갈게요.”
  막딸 아줌마와 서저마 아줌마는 동네에 있는 모든 PC방에다가 제제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온 모양이었다.

 
“요 앞 PC방이래요. 제가 가서 데리고 올게요.”
 
막딸 아줌마는 범인이 나타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형사같이 외투를 집어들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누나로서 무언가 제제에게 한마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제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반찬을 집어주는 막딸 아줌마에게 신경질을 부리고 반찬이 짜다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막딸 아줌마는 내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제제에게 너그러운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내가 “너 입 다물고 조용히 밥 먹지 못해? 어디서 반찬 투정이야” 하고 말하자, 제제는 내 얼굴을 있는 힘껏 째려보더니 “누나는 누나네 집으로 가!” 하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숟가락을 놓자 제제는 그대로 얼굴을 구기며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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