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표지판을 정비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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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도로표지판과 교통표지판은 지상의 등대다. 단순히 사고방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도로가 복잡 다단하고 교통량도 엄청난 현대사회에선 이들의 도움없이는 이동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현대생활의 필수적인 기호체계가 우리 사회에선 소수의 알만한 사람이나 아는 암호같이 되어 있다.
자동차를 몰고 어느 낯선 도시에 들어섰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도로표지판이나 교통표지판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표지판이 작아 글씨가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데다 그나마 가로수 등에 가려 있다. 차선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은 미리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잘 보이지조차 않으니 미리 준비하려해도 할 길이 없다.
작은 크기의 표지판이나마 많이 설치돼 있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교차로에 임박해서나 겨우 나타날 뿐이다. 그러니 좌회전이 되는 줄 알고 달려가다가 교차로에 가까이 가서야 좌회전금지 표시를 발견하고 당황하게 된다. 이럴 경우 신호를 위반하고 좌회전하거나 목적지와는 다르게 직진할 수 밖에 없다. 분통이 더 터지는 것은 미처 좌회전금지 표시를 못보고 좌회전할 경우 회전하자마자 어김없이 교통경찰이 나타나는 것이다. 교통표시를 위반한 것은 틀림없지만 함정에 빠졌다는 느낌에 뉘우침보다는 분노가 먼저 치솟는다.
그런가하면 쓸데없이 너무 미리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표지판도 있어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서울 둔촌동의 한 교통표지판은 「김포공항」이라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둔촌동에서 김포공항까지 얼마인가. 정작 필요한 곳에선 표시를 해주지 않으면서 쓸데없는 곳에선 미리부터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좌회전금지를 해놓았던 좌회전방면으로 갈 사람은 어떻게 가라는 표시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표시가 없다.
표지판마다 현재의 위치를 표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표지판은 당연히 현재 여기는 어디인가를 밝혀놓고 그 다음에 좌로 가면 어느 방향,우로 가면 어느 방향,직진하면 어느 방향인지를 밝혀놓아야 할 것 아닌가.
표지판들의 이런 실태는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대충주의,행정의 자기중심성과 비민주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표지판의 이런 비합리성은 교통체층과 교통사고의 원인중 하나다. 당국은 다른 교통대책을 추진하기 이전에 이런 문제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표지판을 크게 하고 위치는 미리 미리,그리고 거리 중앙으로 옮기며 야광칠을 해서 밤에도 잘 보이게 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인도 표지판만 보면 길을 찾을 수 있게 설명이 상세해야 한다. 한국의 도시는 마치 거대한 미로와 같다는 말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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