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물가·환율 “어려운 조합”/경기는 회복된다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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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돈줄 조이면 외화유입 우려/「개방」 걸맞은 정책대안 시급
올해의 경제운용은 참으로 어렵게 생겼다.
정부가 신경제를 표방하고 나선 이후 줄곧 위든 아래든 「경제회복」을 합창하면서 규제완화·외국인투자유치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의도하는 구조조정은 아직 안 이루어진 상태에서 그간 실제경기는 「이미 상당기간 회복이 진행된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일반인들이 피부로 경기회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고 또 바라던대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데 뭐가 벌써 문제냐할지 모르지만 성장·물가·국제수지·환율 등을 다 함께 놓고보면 올해의 정책 조합은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과거처럼 단순히 「과열」이다,「안정」이다 하는 2분법적 사고의 틀을 갖고는 개방의 길목에 들어선 우리경제를 풀어갈 재간이 없다는 것이 올해 경제운용의 가장 어러운 대목인 것이다.
더구나 고약한 것은 본격적인 회복세라는 경기진단 결과를 놓고 적절한 대응책을 거론하자니 새정부의 「의지」에 반하는 「찬물」로 매도당할 판이라 서로가 서로를 꺼리는 「경직」된 분위기가 정책 당국을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올해 4년만에 경상수지 흑자가 날 것이라고 다들 좋아하는 한쪽 구석에서는 물가걱정이 태산이라 정재석부총리의 취임초 「가격원론」 소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옛날 방식의 「물가 억누르기」가 벌써 곳곳에서 취해지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다 지난해 연말의 투자·소비 증가세가 가세하는 고성장 판세가 이어진다면 다음 경제팀은 그 대가를 크게 치르게 생겼는데도 지금 경제팀은 또 한구석에서 지역개발사업과 사립학교 수업료보조·농어촌 개발 등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추경을 짜고 있기도 하다.
국제수지 흑자도 이제는 별로 반갑지 않다는 것은 지난해 이미 다들 경험해서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정치적으로 4년만에 찾아온 국제수지 흑자가 반가울지 몰라도 환율을 잘 보살펴야 하고 국내통화를 틀어막아야 하는 경제쪽에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도리가 없는 개방경제시대의 「몇」과도 같은 것이 바로 국제수지 흑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규제완화를 외치는 정부가 왜 상업차관을 아직껏 틀어막고 있어야만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면 올해의 국제수지 흑자가 왜 「반갑지 않은 손님」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상업차관을 들여와 이를 우리 돈으로 바꾸어 쓰려면 외환시장에 달러를 내다 팔아야 하고 이때 중앙은행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다면 원화는 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차관을 터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는 원화 환율이 내려가도(원화절상) 좋다는 자가당착 밖에는 안되는 셈이고 마찬가지로 정부도 올해의 국제수지 흑자를 느긋하게 즐기며 기다리고만 있을 한가한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문제는 「경제회복」이라는 「지상명제」에 걸려 그같은 걱정을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이 아직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급히 「경기과열」 걱정을 해서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 경제변수의 「조화」를 열심히 생각해서 가장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더 늦기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본격적인 개방·자율의 길목으로 들어서고 있기 때문에 경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다고 판단될 때 예전처럼 손쉽게 돈줄을 조이거나 할 수가 없게 되어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돈줄을 조이면 국내금리가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외국에서 돈이 더 들어와 다시 원화가 절상되어 버리는,과거에는 없었던 악순환이 정책당국의 발목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마침내 회복되고 있다고 그냥 좋아할 때가 아니라 뻔히 보이는 악순환을 피해가려면 더 늦기전에 재정·성장·금리·가격·환율·실업·국제수지 등에서 「호순환」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정책조합을 빨리 찾아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김수길기자>
◎민간기업·연구기관의 시각/“과열기미는 아니다” 강조/업계/하반기엔 위험… 대책필요/기관
민간기업들은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 들었지만 이를 과열기미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국민총생산(GNP)의 6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아직 별 변동이 없어 물가불안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고 따라서 정부가 국가경쟁력 강화와 경기회복이라는 올해의 정책기조를 섣불리 바꾸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백웅기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거시경제운용팀)은 올 중반이후 단기과열이 우려되며 정부는 통화·환율·재정 등의 정책수단을 밀도있게 조정,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임동승소장은 『투자지표의 상승은 지난 2년동안 투자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며 『특히 중화학쪽은 자본집약적 산업이라 경제성장률보다 투자증가율이 높게 마련이며 선진국과의 경제상황에서 더욱 활발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우자동차 김태구사장은 『지난해 연말 수출을 중심으로 생산과 제조업 가동률이 높아지는 등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호전된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아직 임금교섭이라는 변수가 남아있어 지난해 12월의 경기지표만으로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기협중앙회 중소기업연구원 최동규부원장은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기술개발이 활발하고 이것이 투자로 이어지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피부로 경기회복을 느끼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백 연구위원은 『선행지표인 기계·건설수주 등의 지표로 보면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이러한 부문들이 실질 경제활동에 반영되는 올 중반부터는 단기적인 경기과열이 우려된다』며 『통화·환율·재정 등 정책수단을 밀도있게 조정해 올 중반기에 예상되는 경기과열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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