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뭘하고 있는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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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찰은 지금 어디에 있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서남북에서 출몰하는 떼강도로 94년 1월 서울시민이 공포에 떨고 있다. 3인조의 동일수법 강도가 치안경찰을 비웃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올들어 이틀에 한번꼴로 홀연히 나타났다가는 자취없이 사라지건만 경찰은 아직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태를 보며 경찰의 무능을 탓하기에 앞서 빈약한 경찰수사력이 범인들은 물론 우범자들에게 범죄심리를 더욱 충동하고 있음을 우려한다. 갈수록 범행 발생빈도가 늘어나고 대상 또한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의 불안이 가중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피해자 진술을 통해 이미 3∼4개 조직이 별도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는 짐작이나 하며,시민을 상대로 검문검색이나 해야 하니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경찰의 존재이유인 동시에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과업이다. 일본이나 대만과 함께 세계적으로 치안만은 선진국이라고 자부해온 우리가 어찌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정부는 그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시국치안이 필요없게 된 정통성있는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제 민생치안은 안심해도 좋다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명의 강도가 수도 서울 전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면서 유린해도 속수무책인 현 사태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여기서 치안,특히 민생치안이야말로 구호나 선전으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도둑이 이른바 개혁경찰을 알아주고,강도가 문민정부라고 알아서 기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경찰조직과 정부는 명심해주기 바란다. 민생치안은 실적으로서 증명돼야 하는 것이다.
해답은 한가지. 범죄가 발생하면 범인을 붙잡고 그래서 제2,3의 범행을 예방하는 것 외엔 따로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조직에 수사기술이 뛰어난 전문가가 우대받는 풍토가 조성되고,사건이 발생하면 범인추적에 총력을 집중하는 의욕과 순발력이 넘치도록 조직자세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혹시 제도적으로 경찰이 제 할 일에 전력을 안 쏟도록 되어있지 않은지,또 사기가 떨어지도록 되어있지나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시절처럼 해야 할 일만 생기면 인력·장비·예산타령이나 하는 폐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새정부 들어 여러곳에서 지적되어온 것처럼 일을 놓고도 의욕보다 보신부터 생각하는 무사안일 복무자세를 시급히 타파하지 않는한 경찰은 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경찰은 명예를 걸고 나서야 한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경찰도 선진외국에서 보는 것처럼 골목골목을 누비며 시민곁에 있는 패트롤체제를 한번 검토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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