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강경대응” 급선회 신호/미 주한미군 강화 의미와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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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협상 지지부진에 초강수/힘과시 “최후통첩” 성격도
미국이 주한미군의 방위력을 크게 강화하는 것은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간 핵협상이 진전되지 않음에 따라 유엔을 통한 북한제재가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준비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패트리어트미사일 체제를 유럽에서 한국으로 이동시키기로 사실상 결정한데 이어 아파치 헬기 대대의 배치와 항공모함의 이동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최근들어 북한핵에 관한 미국측의 정보가 핵무기의 1개 이상 보유설로 거의 굳어져 가면서 유엔제재에 이은 군사적 조치까지 거론하는 등의 강경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 수개월동안에 걸친 북한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온 미국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측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체적인 시한을 2월22일 IAEA 이사회 개최시기로 잡고 이 때까지 진전이 없을 경우 제재쪽으로 끌고 가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관련,프랑스 르몽드지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 경우 북한이 일으킬 수 있는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패트리어트 미사일 부대를 주한미군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르 몽드지는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계획을 포기시키기 위한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북한과 협상이 결렬됐음을 선언하길 거부하고 있는 미국정부가 패트리어트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키로 한 것은 북한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수개월동안 뉴욕에서 가진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미국은 내줄 것은 거의 다 내주면서도 자신의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점차 판명돼가고 있다.
미국은 연초에 북한이 국제 핵사찰을 수용하기로 합의했으며 IAEA와 북한간 사찰범위·절차에 대한 협상을 거쳐 사찰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발표한바 있다.
이같은 발표가 있은 직후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실질적으로 무조건 항복한 셈』이라며 정부의 미온적인 협상자세를 맹렬히 비난했다.
미국정부는 이같은 비판이 근거없는 것이라며 사찰은 IAEA의 소관사항이기 때문에 IAEA와 북한간 협상으로 넘겼을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그러나 북한과 IAEA의 협상이 한달이 다 되도록 진전되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함에 따라 미국정부는 궁지에 몰려있는 형국이다.
IAEA가 북한 영변의 핵시설에 설치한 핵안전조치는 감시카메라의 필름과 배터리가 이미 소진돼 계속성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북한이 미국·IAEA와 협상을 계속하는 동안 원자로의 연료봉을 교체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미국이 정보활동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IAEA가 잠정적으로 핵안전조치 계속성이 파괴됐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돼왔다. 그러나 최근 북한과 IAEA간의 협상에서 북한은 1회 이상의 사찰을 할 수 없다고 뻗대고 나왔다. 이에 대해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은 『유효하지 못한 핵사찰을 할 수 없다』고 거부의 뜻을 명백히 했다.
결국 북한과의 협상론을 주장해온 미 국무부는 북한에 대한 그들의 양보가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자 더 이상 온건정책을 주도할 명분을 잃게 된 것이다.
미 국방부와 정보당국,그리고 일부 언론을 포함한 여론주도층들이 협상보다는 군사적 압력을 포함한 강경책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미 국방부장관이 최근 대북문제에 보다 강경한 인물로 교체되는 것도 이런 강경분위기를 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같은 대북 강경제재에 대해 가장 신중한 의견을 가진 쪽은 물론 한국정부다. 최근 미국의 강경파들은 한국이 대북문제에 있어 지나치게 온건론과 협상론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바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일방적인 주한미군의 방위력을 강화하는 조치를 통해 그들의 강경의사를 나타냄으로써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대북조치에 대비하면서 한국정부를 설득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군사적 시위를 통한 마지막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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