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제의 대변혁(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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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농어촌지역내의 농지소유 상한선이 없어진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농지를 살 수 없게 된다. 농지의 전용과 거래에 대한 각종 제한도 대폭 풀린다. 17일 농림수산부가 보고한 새해 업무계획은 이같은 내용의 농지제도 개혁이 핵심을 이룬다.
금년은 UR협정후 첫해인 만큼 농정 당국으로서는 농산물 개방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무언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쫓겼을 것으로 짐작된다. 농지의 소유·이용·거래의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는 농지법의 연내 제정은 바로 그같은 고심의 산물로 이해된다.
생계용의 소규모 가족영농으로는 개방시대의 농업이 생존조차 할 수 없으며,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살리고 근대식 기업영농을 활성화시키는 일은 농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49년 농지개혁법 이래의 최대 변혁을 예고하는 농지법 제정이 있어서는 농업경쟁력 측면 말고도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작년 8월 정부는 30만평까지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기업농을 도입키로 하고 이를 위해 연내에는 농지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안은 논란끝에 결국 국회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30만평의 소유상한선까지를 아예 풀어버린 농지개혁을 추진하려면 그것이 농촌사회에 몰고올 파장을 폭넓게 살피고 보안책을 아울러 강구하는 치밀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농지제도의 근본적 변화는 비단 농업생산성뿐만 아니라 농촌사회의 분배구조,농촌 노동자계층의 형성과 같은 사회구조적 변화까지를 몰고올 것이기 때문이다. 농정당국은 먼저 농지제도의 변혁으로 인한 충격이 UR충격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농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농지제도의 대변혁까지 불사하겠다는 의지라면 비단 대규모 영농뿐 아니라 중·소규모 농가의 경쟁력 강화를 노린 영농혁신 방안에도 더 많은 신경을 썼어야 할 것이다. 우리 농토의 제반조건에 비추어 외국의 농업과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금년부터라도 중소영농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작물선정과 재배방법의 개발을 한층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에 앞서 농정당국은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상과 관련하여 농업도 제조업처럼 대기업 위주의 산업구조로 발전시켜 농지의 지역별 과점구조를 초래토록 할 것인지,아니면 활력있는 다수의 중소영농을 농업발전의 주축으로 삼을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농지의 투기예방책은 농지소유와 거래의 제한을 풀면서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항목이다. 현재의 논값으로 따져도 농지의 이자조차 건지기 어렵다는 농민들의 하소연이 분분한 판에 농지규제완화를 틈탄 투기의 확산과 논값 상승이 재연된다면 농업경쟁력의 회복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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