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구호」보다 「일」이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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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의 진로를 놓고 우리는 작년부터 실질은 없으면서 각종 구호나 거창한 연설만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각급 정부지도자나 정치인은 물론 웬만한 식자들도 입만 열면 국가경쟁력을 논하고 국제화·개방화를 부르짖지만 실제 우리가 경쟁력 강화나 국제화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그런 일을 추진할 태세라도 잘 정비하고 있는 것인가. 실은 말만 하고 있을뿐 구체적 전략·전술도 없고,사람도 돈도 없는 상태는 아닌가.
새해 연두에 서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하며,이제 1994년부터는 연설이나 구호가 아닌 「일」과 실천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무한경제전쟁의 현장에 와 있는데 이제와서 경쟁력 강화니,국제화니하고 구호만 외치기에는 벌써 많이 늦었다. 새해부터는 경쟁력이나 국제화를 위해 총론에서 각론으로,관념적인데서 구체적인 것으로,말에서 행동으로 옮겨가야만 한다.
우리가 보기에 지금 상당수 국민은 어리둥절한 상태다. 대통령부터 사회 각계에 이르기까지 갑자기 국제화·개방화란 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말뜻을 모를리 없겠지만 그렇다면 국제화·개방화의 전략·전술은 뭔가,우리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바뀌고 국사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새로 매겨지는가… 이런 문제에 대한 방향제시나 회답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새해까지 이어져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제화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잘 설명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과 방향을 내놓아야 한다. 흔히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투자가 필요하고,결국은 교육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제화를 말하기 전보다 과학기술투자에는 얼마나 더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교육개혁을 위해서는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가.
지금 국가적 현실은 다급하고,할 일은 태산같다. 무한전쟁의 현실은 냉엄하다. 우리의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해부터는 정부부터 실천적·실무적 자세를 확고히 보여야 한다. 지난 10개월간 여러가지 필요한 개혁작업을 해왔지만 그중에는 능률보다 인기의 요소도 눈에 띄었고,국가경영의 미숙성도 없지 않았다. 이제부터 정부가 할 일은 박수가 쏟아지던 사정이나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던 인기 개혁작업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국민을 설득해 희생·헌신을 감수케 하고 경쟁력 강화와 국제화를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고,그러자면 인기보다 욕먹을 각오가 돼있어야 할 것이다.
새해를 두고 「국제화 원년」이니,제2개국이니 하는 말이 쏟아지지만 문제는 「일」이고,「능률」이고,「경쟁력」이다. 새해에는 모든 노력·관심과 논의의 초점을 여기에 맞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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