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포럼

486세대 정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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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7대 국회는 훨씬 젊고 그래서 한결 활기찬 모습이 될 게 틀림없다. 4월 총선 공천 신청자 행렬이 과거에 비해 훨씬 젊어진 데다 당마다 젊고 참신한 인물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1차 마감한 공천신청자를 보니 30~40대가 56.7%로 절반을 넘고, 50대 30.2%, 60대 이상 13.0%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 출마 평균 연령이 15대 53.4세, 16대 52.6세에서 이번엔 40대 후반으로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다. 50대 대통령과 함께 정치권의 그림이 젊어지면 그만큼 사회 전체도 보다 역동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공천신청자의 절반이 넘는 30~40대는 이른바 386세대의 범주에 속하는 그룹으로 개혁적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386세대란 명칭이 등장한 지도 몇년이 지나 말 그대로의 386(30대, 80년대 대학생, 60년대 출생)은 이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나머지 절반은 40대가 됐으니 이젠 486인 셈이다. 몇 살 더 먹었다고는 하지만 이들 연령층이 가졌던 사회개혁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자부심.사명감 등은 여전히 유효하리라 본다. 이 때문에 이들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시도에 "정치개혁의 청신호"라며 반기는 분위기다.

인물을 갈아치워 낡고 부패한 정치판 자체를 뒤흔들라는 물갈이.판갈이가 여론의 대세이고 보면 젊은 신인들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과연 국회가 젊어지고 386.486세대로 물갈이되는 자체로 정치개혁의 기반이 이뤄지는 것일까.

젊다는 것은 그만큼 때가 덜 묻었고 패기가 넘친다는 점에서 구태의 정치구도를 바꾸는 데 상대적인 강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16대 국회에서도 변화의 시도는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비록 개혁을 일궈내지는 못했지만 여야 각당의 젊은 의원들이 이리저리 모이고 고민해온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장면도 목도됐다. 청와대의 386정치실험이 실패로 귀결된 게 그 한 예다. 젊은 기수 이광재.안희정씨가 정권의 실세로 정치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보여준 검은돈 행태라니. 그들이 손가락질하던 못난 어른들과 하나도 다른 게 없다. 이들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에 대거 포진하고 있던 386들이 1년 남짓한 지금 어디로들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걸어나갔는지, 강제 퇴출됐는지는 알 수 없으되 결국 경륜과 능력의 문제에 걸린 게 아니겠는가.

李.安씨의 경우 대학시절 운동권에서 활약하다 졸업한 뒤 곧바로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내는 등 지금까지 해온 일이 오직 정치라고 한다. 이번 젊은 공천신청자 중에는 두 사람과 비슷한 경력의 '직업 정치인'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정치현장을 몸으로 겪으면서 어디가 잘못됐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정치개혁의 적임자일 수 있다.

다만 그 대전제는 시들지 않은 정의감과 순수성이다. 순수성을 잃고 기성의 흙탕물 정치에 물들었다면 그들에게서 어떻게 정치발전을 기대하겠는가. 그러나 욕하면서 배운다던가. 불행하게도 몇몇 386에게선 화합이 아닌 대결과 투쟁, 내용보다 포장과 선전, 논리와는 동떨어진 술수.꼼수가 내비친다.

요즘 TV에 비치는 정치권 그림은 사실 너무 칙칙하다. 산뜻한 모습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젊으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속으로 병들지 않았는지 잘 가려내야 한다. 특히 학창시절 시위가 유일한 자산인 인사는 곤란하다. 나만 옳다거나 반대만을 일삼는 외골수 투사야말로 상생정치에 치명적 장애물이다.

허남진 논설위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