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그섬에 가고싶다-이념갈등 응어리 녹인 영상의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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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5일 개봉되는 박광수감독의『그섬에 가고싶다』는 우선 그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올해 등장한 한국영화들중 몇몇 작품을 빼고는 대부분 비현실적인 소재로 억지 얘깃거리를 만들어냄으로써 결과적으로 관객들로부터 버림받는 잘 못을 저질렀다. 『그섬에 가고싶다』는 우리자신이 경험했던 역사적 공간으로우리를 되돌려 놓는다.잘못 이식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공동체적연대감이 철저하게 파괴돼버린 공간,그래서 지금도 지울수 없는 상처로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 남아있는 그러한 공간 이다.
회색빛 여름바다에 아름다운 상여가 떠가는 첫 장면부터 영화는관객들에게 묘한 불안감을 던져준다.상복을 입은 상주와 몇사람이탄 배가 앞서가고 뗏마에 실린 꽃상여는 그뒤를 따라가고 있다.
장마비는 흩날리고 상주인 문재구와 그의 친구 김철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차 있다.
문재구는 고향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덕배의 유언이 실현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예상대로 섬에 가까워지자 마을사람들은 상여를 마을로 절대 들일수 없다며 배를 대는 것조차 거부한다. 가까스로 섬에 혼자 당도한 김철은 자신의 뇌리에 또렷하게 박혀있는 네여인에 대한 추억과 그해 여름날의 한 사건을 떠올린다. 엄마없이 자란 철은 마을의 여러 여성들의 품속에서 자라다시피 했다.재구의 어머니 넙도댁의 한 때문에 울어보았고 벌떡녀의 끼를 보고 성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으며 무당이 된 업순네를 졸라 엄마의 영혼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철에게 삶의 따뜻함과 죽음의 허망함을 알게해준 것은 바보지만 시적 직관력을 가진 옥님이었다.그러나 바깥세상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철이를 둘러싸고 있는 평화로운 공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섬에 가고싶다』가 단지 다루고있는 소재가 무겁기 때문에 주목할만한 영화가 된 것은 아니다.
박광수감독은 짜임새있는 화면구도로 극적 긴장감을 잘 만들어나갔다.흔히 그의 영화를 영상이 뛰어나다고 평하지만 이것이 이야기 전개와 잘 맞물리지 못할 때 그 아름다운 영상이란 지극히 공허한 것이기 십상이다.현재의 장면을 음울한 톤으 로,회상장면을 밝은 톤으로 차별화한 것도 유년기의 상처가 아직도 김철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시각화하려는 의도다.
마을 네 여인들의 성격묘사도 주역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넙도댁역을 맡은 최형인과 업순네역의 이용이는 기대를 뛰어넘은 열연을 보여준다.
영화의 화자인 김철의 성격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지않은 점이나 결말이 조금 급작스럽다거나 하는 것등에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적극적으로 담아온 박광수감독이 이제 역사적 문제의 뿌리에까지 다가가려 노력한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중대한 흠이 아니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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