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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책동네] '밑지는 장사'도 좋다, 교토에 세운 한국 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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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교토(京都)의 비즈니스 중심가인 고죠(五條)거리. '교토 긴세이도(金生堂)'란 간판이 걸려 있는 50평 남짓한 서점에 들어서자 '한국법원사' '한국경찰사' '북한미술사' 등 한국 학술서적이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줄잡아 3만권의 학술서적이 꽂힌 서가는 영풍문고가 개장(改裝)하면서 처분한 서가를 그대로 배로 옮겨 온 것이다. 또 서가 위에는 한국의 골동품도 여럿 장식돼 있어 마치 한국의 어느 학술 전문 서점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곳은 지난 11일 일본에 최초로 생긴 한국학술 전문 서점이다. 그동안 일본에 있는 한국 전문 서점이라고 하면 현지 동포들이 한국 잡지나 서적을 가져와 영세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일본에서 한국학을 공부하는 대학교수나 연구자들이 한국 관련 학술서적을 구하려면 한국에 직접 가서 사거나 한국내 지인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한국 학술 전문 서점을 낸다고 해도 어차피 '수요'의 한계 때문에 '밑지는 장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무모함을 무릅쓰고 서점을 창립한 두 주인공은 40년 동안 책 외길을 걸어온 한국의 김성천(金星天.62)씨와 열렬한 '백제 팬'인 일본의 나마세 모토히코(生賴元彦.47). '한.일 공동대표체제'로 운영되며, '金生堂'이란 서점 이름도 두 사람 이름의 앞 글자를 따 지은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3년 전 경인문화사에 근무하던 김씨가 판매영업차 교토에 출장을 와 나마세가 경영하던 임대주택에 묵으면서 시작됐다. 2개월에 한번꼴로 자신의 임대주택에 짐을 풀고 도호쿠(東北).규슈(九州) 등 일본 전역을 종횡무진 누비며 책을 팔러 다니던 김씨의 열정을 곁에서 바라보던 나마세는 "교토의 장인(匠人)정신 비슷한 것을 느꼈다"고 한다.

김씨는 "현재는 일본내 5백30여명의 '조선학회'회원들이 주고객이나 한국에 대한 일반 일본인들의 관심도가 커지고 있어 전망은 밝다"며 "앞으론 일본내 대학도서관 등에 소장돼 있는 한국 관련 서적이나 자료 등을 발굴해 이를 한국 내 연구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도 구축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교토=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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