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인선결정/누가 영향 미치나/철저한 보안속 모든채널 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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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와대·안기부서도 “얼마나 반영될지 몰라”/친분있는 사람에 전화 직접 자문구하기도
김영삼대통령의 인사특징은 비밀주의다.
총리를 임명하고 난뒤 개각을 미루며 며칠이 지났는데도 청와대쪽에서 이렇다할 하마평이 일절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6공때 노태우대통령은 개각이 가까워오면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여러채널을 통해 의식적,또는 무의식적으로 내용을 흘려 해당인사에 대한 검증을 사전에 받았는데 이와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인사문제에 관한 한 의사결정 과정 자체도 베일에 싸여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여러 통로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결심에 영향을 미치는 자문그룹은 청와대·안기부 등 공식기구뿐 아니라 광범한 개인적 친분망 등이 있다.
대통령은 이들로부터 광범한 추천을 받되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사전에 언질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각 계선은 추천은 했으나 얼마나 반영이 될지에 궁금해하고 있다. 이러한 반영률은 곧 추천기관 또는 개인 영향력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개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인선작업의 핵심 실무자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선내용은 대통령과 비서실장 밖에 모른다』고 말하는가 하면 당연히 인선작업의 의논대상이 될만한 민주계 중진의원도 『우리의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지 채택여부나 인선내용은 진짜 모르겠다』고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개각준비에 부산했어야 할 19일 청와대는 전혀 색다른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관저에서 하루종일 머물렀으며,가장 바빠야할 박관용 비서실장과 주돈식 정무수석은 평소의 휴일처럼 출근하지도 않았다. 거꾸로 경질이 유력시되는 박재윤 경제수석과 자리바꿈의 가능성이 있는 김양배 행정수석 등이 자리를 지켰으며,김영수 민정수석은 오후에 잠시 들렀다.
그렇다고 전혀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 비서실장은 이날 오전부터 공관을 떠나 외부에 머물렀다. 김혁규 사정비서관도 내내 모처에서 밀실작업을 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번에도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50∼60여명의 후보명단을 작성해 올렸다. 명단작성작업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명단을 올렸다고 한다. 워낙 갑작스런 밀명이었기에 관련자들조차 어리둥절해하며 명단을 올리고서도 『얼마나 반영될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한다. 과거 대통령들이 많이 의존했던 이 두개의 공식적인 채널이 김 대통령에게는 여러 채널중 하나에 불과해졌다는 얘기다.
최형우·황명수·김덕룡씨 등 민주계 인사들도 나름의 의견을 박 비서실장 등을 통해 건의했다. 총리경질이 알려진 16일 최·황 두 중진의원은 본회의중 국회 사무총장실을 빌려 밀담을 나눴다. 황 사무총장과 김 정무1장관은 별도로 16,17일 각각 박 실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의견은 구체적인 거명이라기보다 『민주계가 전면에 나서 내년부터 본격화될 지방자치 선거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식의 계파 전체 이해를 대변하는 주장들이다.
대통령이 가장 믿는 개인적 채널은 혈육인 차남 현철씨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현철씨는 지난 대선때 싱크탱크로서 학자집단을 운영,이들중 몇몇을 현 내각으로 추천하는 등 조각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시 일부 인사의 경력시비로 물의를 빚었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약 1천여명에 달하는 유력인사들의 신상카드를 별도로 관리해왔다는 얘기도 있다.
대통령은 이밖에 믿을만한 자문대상을 자신의 전화번호 수첩에 기록해두고 수시로 전화해 여론을 듣는가하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는 그중 일부를 직접 청와대로 불러 독대한다고 한다. 어려웠던 야당시절부터 꾸준히 그를 밀어주었던 중소재계의 인사들,종교인,과거의 야당 중진들,그리고 가까운 친인척 등이 그의 사적인 통로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오병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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