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환희와좌절>4.17세의 모래판 황제 백승일의 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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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大雄이형의 샅바를 잡는 손이 바짝 긴장됐다.
11월28일 장충체육관,제2회 천하대장사 씨름대회 결승전.
내가 2-1로 앞선 상황에서 넷째판.
『이번 판에 끝내야 한다.만약 2-2로 간다면 꿈은 물거품이되고 말지도 모른다.상대는 천하장사 세번에 백두장사를 여섯번 차지한 노장이 아닌가.』손바닥에 땀이 흘렀다.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
1-1의 어려운 상황에서 안다리로 승부를 걸어 성공했던 正泌이형과의 준결승전이 떠올랐다.
『또한번 안다리? 잘못 걸면 노련한 대웅이형에게 역습기회를 주게된다.들배지기? 첫판에 들배지기를 하다 되치기를 당하지 않았는가.그렇다면….』 드디어 심판의「시작」소리가 들리고 대웅이형의 힘이 느껴졌다.배지기였다.
순간적으로 몸을 빼며 온힘을 다해 샅바를 당겨 잡치기로 역습을 시도했다.
몸이 엉키며 모래위로 쓰러졌다.맥이 확 풀렸다.
함성과 박수.잠시후 흩날리는 오색종이.
프로초년생인 내가 프로씨름의 왕중왕 천하대장사가 된 것이었다. 『아,정말 내가 해낸 것인가』.
4전1승3패로 내게는 가장 높은 장벽이던 정필이형을 꺾었을때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꽃가마에 앉아 행진을 하는동안 지난 1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하루라도 빨리 떨쳐버리고 싶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청구씨름단에 입단하며 각오를 다지던 일.
프로데뷔 첫무대인 설날천하장사대회에서의 3위입상과 매스컴의 평가. 그러나 곧 좌절감을 안겨준 3,4월대회에서의 8강탈락.
팀의 대회출전 중단조치.우리 3남매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평생가난속에서 고생해 오신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
5,6월 두달동안 고통속에 비지땀을 흘리던 나와의 싸움.
재출전,그리고 천하장사의 영광을 안겨준 7월5일 춘천대회.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
다시 10월 백두장사와 천하장사,11월 연변천하장사.
돌이켜보면 아마시절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여러 선배들을 하나둘씩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지난 1년간의 일들이 꿈만 같았다. 그러나 겨우 프로모래판에 적응한 것뿐이다.
만17세.이제부터 시작이다.지키기 위해서는 얻을때보다 몇배 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감히 李萬基선배의 대기록(정규 천하장사 10회)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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