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각>한치앞도 못보는 도시계획 문화유산이 사라져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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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문화란 꽃은 정치적 안정,경제적 풍요로움,교육적 성숙의 바탕위에서 피어나는 것이다.문화란 이처럼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이어서 몇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다만 추상적으로는 올바른 사고방식,맑은 도덕률,풍부한 상상력등을 총 칭하는 것이 바로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한 문화가 구체적 형상을 띠고 역사적으로 축적돼온것이 바로 문화유산이다.그것은 정치.경제.사회.교육등이 조화로운 관계의 總體를 이루었을 때 가능한 문화의 可視化라 할수 있다. 우리나라는 치졸한 정치풍토 속에서 경제와 체육에 너무 쏠려 GNP와 기록경신에 몰두한 나머지 각 분야의 균형있는 발전을 소홀히했다는 데서 위기감을 느낄 때가 많다.그 단적인 예가역사적으로 구체적 형상을 띠며 축적돼온 문화유산의 방기상태를 들수 있다.
서울만 해도 조선시대 6백년 도읍지의 자취가 거의 사라져버린지 오래다.외국인들은 서울에 와서 조선시대의 역사가 어디 있는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찾을수 없어 실망한 나머지 발길을 돌려버리곤 한다.
파리나 런던.로마,심지어 뉴욕같은 도시도 옛 모습을 유지하려노력하고 있다.시민들은 옛 문화유산이 그대로 보존된 도심에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이다.일본의 나라(奈良).교토(京都).도쿄(東京)도 마찬가지다.
문화유산과 현대문명이 잘 조화된 이들 도시의 풍광과 비교해볼때 서울의 모습은 여기저기 고층건물들이 현란하게 林立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로 비참하기까지하다.
서울의 옛 거리들과 집들은 거의 자취를 잃고 고궁만이 孤島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신라의 천년수도인 慶州도 마찬가지다.문화유적을개발한다는 구실아래 옛 모습과 정취를 말끔히 제거해가고 있다.
백년을 앞두고 심사숙고해야 할 도시계획이 전혀 없는 상태다.
우리민족의 이러한 무지와 방기,무관심.불감증등을 보면 선진국대열에 끼려는 우리나라의 안간힘이 오히려 어리석고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든 분야의 역사적 결정체인 문화유산은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돌이킬수 없다.앞으로 앞으로만 전진할 것이 아니고 과거를 되돌아보아 그것을 싸안고 이뤄내는 전진이야말로 참된 발전이란 것을통감해야 한다.
도시계획의 不在-이것이 오늘날 문화유산보존과 관련해 우리들이처하고 있는 최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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