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행차뒤 나팔 쌀협상 한국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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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키 캔터 美무역대표부 대표와 리언 브리튼 유럽공동체(EC)집행위 대외무역담당위원이 1,2일 브뤼셀 EC본부에서 전세계의이목을 집중시키며「타결」과「파국」의 갈림길에 놓인 우루과이 라운드(UR)협상을 벌이고 있다.
회담기간 워런 크리스토퍼 美국무장관이 브뤼셀로 날아가 캔터 대표 측면지원에 나섰고 피터 서덜랜드 가트사무총장이 회담의 결실을 강조,막바지 UR협상에 미국과 EC가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비중에 걸맞게 회담장 주변에는 각국에서 몰 려든 5백여명의 기자들이 프레스센터에 진을 치고 회담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회담 종결까지 공식브리핑이 없는 탓에 회담장 밖에는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느닷없이 EC본부에 韓國에서 許信行농림수산부장관을 단장으로 한 UR협상 고위 정부대표단이 2일밤 도착한다는 소식이전해졌다.한국대표단은 3일 오전 르네 슈타이헨 EC 집행위 농업담당위원과 면담, 쌀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고EC측의 협조를 요청한다는 것이 韓國 EC대표부측 설명이었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다.3일이라면 EC측은 이미 美측과 농업문제를 포함한 포괄협상안을 마무리지을 시점이다.농업문제에 끈질기게 매달려온 EC와 공동보조를 취해 우리도 쌀시장 개방을늦추겠다는 심산이라면 許장관 일행의 방문은 너무 늦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협상의 걸림돌이 돼온 농업문제에서 거의 손을 턴 EC에 대고우리 농민들의 딱한 입장을 아무리 설명한들 약효가 있을 리 만무하다.이미 쌀시장 개방안은 수개월전부터 협상해온 일본측의 案대로 95년부터 4%를 개방하고 6년후엔 완전 관세화한다는 쪽으로 굳어져버린 것 같다.
농림수산부장관이 방문목적을 실현시킬 뜻이 있었다면 몇달전부터협상을 끈질기게 벌여왔어야 했거나 적어도 1,2일의 美-EC회담이 있기 며칠전에라도 왔어야 말이라도 붙여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초 이번 방문은 쌀시장 개방에 대한 국내의 비판여론이 고조되면서 며칠전부터 추진됐으나 번번이 거절돼오다 EC가 UR협상을 마무리짓는 3일 가까스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면피用」에 지나지 않는다.몇년전 쌀시 장 개방검토 운운했던 제네바대사가 본국정부로부터 호되게 경을 친 후 이곳에서도 개방불가피 분위기를 알면서도 입을 떼려는 정부관리들이 아무도 없다.
버스 떠난 후 뒤늦게 우리 입장을 밝히겠다는 한국대표단은 누구를 상대로 설명하고 누구와 협상할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브뤼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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