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모아 배추파동 극복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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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의 배추파동을 보면서 누구나 안타까운 심정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전체 우리 경제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까짓 배추쯤이야… 할지 모르나 쌀이나 배추·김장같은 문제는 단순한 돈문제가 아니다. 수천년이래 우리 민족의 삶과 정서가 묻어있고 우리 민족이 갖는 어떤 고유성과도 관련되는 문제다. 더욱이 과거 뼈저리게 가난을 겪은 장년층 이상의 세대에게는 김장은 연중 대사였고,배추나 무는 값의 고하간에 껌이나 과자같은 것과는 동열에 둘 수 없는 소중한 대상이었다.
그런 배추가 올해 다소 풍작을 이뤄 소비가 다 안된다고 하여 그대로 썩이고 소에나 먹인다는 것은 단순히 아깝다는 것 이상으로 국민감정을 아프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업다.
우리는 이런 배추파동을 맞아 각종 행정관청이나 시민단체 등이 배추 팔아주기,김장 다섯포기 더 담그기 등의 운동을 벌이는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그런 운동이 전국민의 절실한 호응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떻게 보면 이런 배추파동은 우리 공동체의식의 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경제논리에만 따른다면 배추소비량은 거의 일정하고 배추가격이란 수요·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 농민을 생각하고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그 아까운 배추를 썩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배추파동은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가령 서울시나 보훈처가 배추팔기운동에 나선 것처럼 전국의 음식점들이 들고 일어나 다른 반찬,다른 재료를 줄이고 배추를 더 소비하도록 음식점협회가 나설 수도 있고,여성단체들이 이런 운동에 앞장설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썩어가는 배추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에서 배추의 가공처리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새로 개발되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며,김치에 맛들인 외국사람이 날로 늘어간다는데 이 기회에 싼 가격으로 김치수출의 시장개척도 모색해봄직 하지 않은가.
요컨대 관청·시민단체·음식점·가정·개인할 것 없이 안타까운 심정만 절실하다면 각자가 각자의 입장에서 배추파동을 극복할 나름의 역할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각자의 역할수행은 단순히 농민의 시름을 얼마간 덜어주고 배추 몇만 포기를 건진다는 차원이 아니라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가 얼마나 단합해 극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촌의 무한경제전쟁에서 우리가 생존·번영하자면 결국 이런 공동체의식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배추파동이 우리의 공동체의식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온 국민이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배추사랑」을 보여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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