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구호 사라진 대학선거 유세(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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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강의평가제를 실시하고 도서관시설을 확충해 우리대학을 진보적 전문인의 터전으로 만들겠습니다.』
『도서관 진입로에 가로등을 설치해 「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한편 유흥업소가 즐비한 「녹두거리」를 밝고 건강한 문화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19일 오후 서울대 도서관앞 아크로폴리스광장.
쌀쌀한 날씨에도 1천5백여명의 학생들이 다섯시간 가까이 진행된 총학생회 후보들의 유세를 진지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서울대 학생회선거 사상 유례없이 5명이나 되는 후보들이 나선 이번 선거에서 일부 후보들은 여전히 구호와 공약 곳곳에서 NL(민족해방),PD(민중해방) 등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긴 했지만 학생들은 그 차별성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이를 피부로 느낀 후보들도 과격한 구호 대신 한결같이 「세계에 도전하는 대학」 「제3세대 대학」 「희망의 길 찾기」 등 학내문제로 초점을 바꿔나갔다.
이념과 정치구호의 잔치로 일관하던 과거 학생회선거 유세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오히려 후보연설에 앞서 각 후보진영의 선전대들이 펼치는 부드럽고 경쾌한 음악과 율동에 더 흥미를 느끼듯 했다. 한 후보는 연설도중 즉석에서 유머섞인 자작시를 읊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살벌하던 시절에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들입니다.』
간간이 터지는 학생들의 웃음과 탄성,박수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본부 창가에서 유세장을 내려다보던 한 본부직원은 바뀐 학생회선거 풍경에서 시대의 변화를 새삼 실감한다고 말했다.<이현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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