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관련 쌀개방 공동선언문 채택될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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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호등 추진공세에 한·가등 연합전선 펴 무산
이번 시애틀 APEC 회의의 진짜 알맹이는 심야 비밀회의를 통해 진행된 UR 관련 회의였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하마터면 쌀개방을 기정 사실화하는 공동선언문이 채택될뻔 했다. APEC이 시작되기전부터 미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APEC 회원국들에게 통보되었었고,이에 한국측 대표단은 졸지에 비상이 걸려 대책마련에 부심해야 했다. 미국이 이번 APEC에 요구한 UR 관련사항은 첫째,공산물에 대한 관세인하계획(무관세화 범위확대 등)과 둘째,농산물 보조금 축소·예외없는 관세화문제 등에 관해 APEC이 적극적인 지지표명과 동참을 선언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쪽은 미국을 비롯해 호주·뉴질랜드 등 농산물 수출국이었고,반면에 한국과 일본·캐나다·인도네시아 등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반대했다. 특히 한국이 놀란 대목은 「예외없는 관세화」였다. 이것을 포함시켜 APEC의 이름으로 지지를 선언하는 날이면 사실상 쌀을 포함한 농산물시장 개방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입장이 매우 강경했을뿐 아니라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각료회의에서 정식으로 관세화에 관한 지지발언을 하는 바람에 미국측 주장이 그대로 먹혀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미국측이 요구한 구체적 내용을 들여다 보면 우선 지난 7월 미국·일본·EC·캐나다가 동경에서 합의한 무관세화 품목에서 APEC 회원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할뿐 아니라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품목에 대해서도 APEC이 독자적인 패키지를 만들어 관세인하계획을 선언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으로서는 농산물의 관세화 부분을 선언문에서 빼기 위해서는 공산물의 관세인하쪽에서 양보할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방침을 세우고 지지세력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한국 관계자는 『APEC의 협조체제를 구축하자는 마당에 농산물 관세화처럼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와 특정국가들을 코너에 몰아넣으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했고 그것은 상당히 효과를 발휘했다. 결국 4페이지에 걸친 구체적이고 장황한 당초의 UR 지지선언문을 1페이지로 줄이고 내용도 관세화부분은 빠졌다. 결국 이번 APEC 각료회의는 시작부터 끝까지 UR문제를 둘러싸고 각국이 밀고 당기는 사실상의 UR 회의였던 셈이다.<시애틀=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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