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맹인극단 소리단원 역경의 연기연습 석달 인간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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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 극단이 창단돼 공연을 갖는다.
8월 출범한 극단「소리」의 시각장애인 단원 8명은 3개월여의준비끝에 15일오후 막이 오르는 창단공연을 앞두고 가슴이 설렌다. 서울동숭동 대학로 인켈아트홀에서 두차례 막을 올리게 될「소리」의 처녀공연 작품은 金芝河원작의『금관의 예수』.
소외계층의 삶을 표현한 작품내용이 극단의 창단취지와 잘 맞는다는 판단에서 선정됐다.
연출은 72년 초연당시의 스태프인 崔鍾律씨(48)가,음악지도는『아침이슬』의 작곡자인 金敏基씨가 각각 자원봉사를 맡았다.
정상인들에게도 결코 쉽지않은 연극에 시각장애인들이 도전하게 된 것은 시력을 잃기전까지 배우로 활동했던 극단장 李永鎬씨(43)의 눈물겨운 집념의 결과였다.
영화감독 李長鎬씨(48)의 동생인 李씨는 본격적인 영화수업을위해 미국 뉴욕 大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 89년초 망막색소변성증으로 눈앞의 사물도 식별할 수 없을만큼 시력을 잃게 됐다.
좌절감에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한 李씨는 1년반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소리로 보는」 세상을 표현하기로 결심,맹인 극단을 만든 것.
맹인잡지와 라디오광고를 통해 모인 단원들은 매주 세차례씩 연습하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했다.
방향을 잡지못한 배우가 연습도중 벽에 머리를 부닥치는 것은 예사였다.
소품으로 쓰이는 깡통에 얼굴을 찢겼을 때에는 서로 부둥켜안고울기도 했다.
앞을 보지못하고 살아오는 동안 안면근육이 거의 마비된 단원들에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표정 연기였다.
『양미간을 찡그려라』『입꼬리를 위로 일그러뜨려라』는 등의 설명이 먹혀들수 없었다.
연출자 崔씨가 직접 손으로 단원들의 표정을 만들어주고 반복연습을 시켜야했다.
3명의 단원이 도중하차하는 바람에 배역이 몇차례 바뀌기도 했다. 거지역을 맡은 선천성맹인 林熙男씨(23)는 처음 꽹과리장단에 춤을 어떻게 추는지 몰라 막막해 했다.가끔 엉뚱한 곳을「쳐다보기도」했지만 피나는 노력끝에 이제는 수준급의 연기를 보일 수 있게 됐다.
어떤 어려움도 단원들의 진지한 자세와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연출자 崔씨는『숱한 연극을 연출했지만 이번만큼 감동적인 경우는 없었다』며『단원들의 연기력이 기대이상이어서 관객들에게 좋은작품을 선보일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감을 보일 정도다.
이번 공연의 수익금은 단장 李씨가 추진중인 시각장애인 컴퓨터도서관 건립기금으로 전액 사용된다.
〈芮榮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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