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열반-현미밥 아침공양뒤 누워있다가 앉아서 눈감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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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性徹 큰스님의 열반 이틀째를 맞아 해인사에는 전국사찰의 스님.제자등 5백여명과 일반신도 1천여명이 조문차 몰려 들어 참배. 분향소가 차려진 승가대학의 강당인 궁현당앞에는 金泳三대통령의 대형조화를 비롯,盧泰愚前대통령.金鍾泌民自黨대표.李基澤民主黨대표등 각계에서 보내온 30여개의 조화가 놓여져 있으나 海印寺측은 그후의 공식적인 조화는 사절.
○…性徹 스님의 장례식 절차와 방법등을 의논하기 위해 海印寺에는 5일 오전8시부터 조계종 徐義玄 총무원장과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인 宋西庵스님.해인사부방장 혜암스님.주지 법전스님.율주승인 일타스님등 원로스님 10여명이 모여 산중회의 를 갖고 구체적인 장례일정을 확정.
이날 회의에서 性徹종정의 장례식은 10일 오전 11시부터 영결행사에 들어가 오후2시 영결식장에서 2㎞정도 떨어진 가야산 연화대에 마련된 다비장에서 다비식을 갖기로 확정하고 장의위원장에는 서의현총무원장,집행위원장에는 일타스님을 각각 임명.
○…性徹스님은 열반에 들기 직전인 4일 새벽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거소인 堆雪堂에서 깨어나 참선과 정진.새벽예불을 마쳤고오전6시 현미밥과 솔잎.콩등으로 아침공양까지 했다고 상좌인 圓澤스님이 전언.
오전7시30분 자신의 친딸인 不必스님과 10여명의 측근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퇴설당에 누워있던 性徹스님은 갑자기『이래선안되겠다.일어나고 싶다』고 해 이들이 부축해 일으켜 앉히자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내쉰뒤 앉은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입적했다는 것.
○…圓澤스님은 性徹큰스님이 애제자들에게 마지막 내린 말이『참선 잘하라』는 것이었다며『가을 들어 이젠 갈때가 됐다는 말씀을서너차례 하셨으나 세상에 알려진것 보다는 건강상태가 좋으셔서 최소한 2~3년은 더 사실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 자기 입적하셔서 슬픔이 더 크다』고 흐느꼈다.
○…金泳三대통령은 5일 불교조계종 性徹종정의 입적에 대해『우리나라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이신 性徹 큰 스님의 입적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는 조전을 보냈다.
○…金壽煥추기경은 4일 오후 性徹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조전을 해인사로 보냈다.
○…性徹스님의 입적이 공교롭게도 6백년간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돼 있던 팔만대장경이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계로 3일 처음 서울 나들이를 떠난뒤 발생,조문 온 신도들 사이에선 팔만대장경 移運과 큰스님의 열반에 무슨 연관이 있는게 아니냐 는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나돌기도.
이들은『聖物을 너무 소홀히 취급했다』『경판을 해인사경내에서 벗어나게 한것이 잘못』이라며 팔만대장경 이송에 아쉬움을 표시.
[海印寺=許尙天.金善王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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