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김남국 저,부하린-혁명과 반혁명의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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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치세계를 독해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권력론을 들 수 있다.라스웰의『누가,무엇을,어떻게 차지하는가』는 이러한 방식의 고전적인 예일 것이다.
또 하나의 독해방식은「정치적 논쟁」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다.고래로 정치세계는 대립된 의견들의 긴장된 논쟁의 연속으로 특징지워진다.그 대표적인 예로 플라톤의『국가론』서두에 나오는「정의」에 관한 열띤 논쟁을 상기할 수 있다.
김남국의『부하린:혁명과 반혁명의 사이』는 바로 두번째 방식인「정치적 논쟁」에 착안한 정치세계의 독해다.
저자에 의하면 부하린은 이미 17세되던 해인 1905년완전한마르크스주의자가 되어 있었다.그러나 그가 볼셰비키 혁명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21년 망명지인 스위스의 크로코에서 레닌과 만나면서부터 였다.부하린에게 있어서 가장 운명적인대결은 스탈린과의 논쟁이라고 볼 수 있다.스탈린은 1928년부터 공업건설의 가속화와 농업집단화를 서두르기 시작했고 1929년에는 제1차 5개년계획에 착수했다.부하린은 스탈린의 공업화정책에 대해 『나무를 보다 빨리 자 라게 하기 위해 뽑아올리자』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이로부터 양자의 관계는 냉각되기 시작한다.후에 스탈린은 부하린 그룹을「폭풍우」를 만나 두려움에 떠는「어부」등에 비유하고 있다.이제「부하린 전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부하린 재판」의 장에서 저자는 집을 떠나면서 그의 아내에게 준 부하린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적고 있다.『비통해하지 마라.역사에는 슬픈 실수가 있다.』독자들은 김남국의 부하린을 통해 앞서 인용했던 라스웰의 정치학에서는 맛볼수 없었던 정치세계의 비정함과 휴머니티를 동시에 만끽하게 될 것이다.흔히 정치세계가 행동의 세계라고 말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세계를 과연「어떻게」우리들의 눈앞에 생생하게,그리고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하기 용이하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독자들은 정치세계가 갖고 있는 이러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바로 김남국의「부하린」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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