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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백서·물증 제시하며 질의/달라진 국감 질 경쟁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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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병기로 무장 대정부 공세 강화/쇠고기·음주측정기·볏단등 강화
문민정부 수립후의 첫 국정감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초·재선 의원들의 열성이 눈에 띈 가운데 「비디오질의」 등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수 등장하고 감사장에서 눈물을 글썽이거나 「질의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등 갖가지 해프닝이 일어났다.
○발로 뛰어 조사
○…일부 의원들은 비디오 영상질의,장문의 백서,발로 뛴 여론조사 등의 신병기(?)로 무장하고 국감에 임해 감사의 질을 한단계 높이는데 기여했다.
노동위의 신계윤의원(서울 성북을·민주)은 산업안전공단 감사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도사린 공사현장들을 촬영한 비디오를 동원해 생생한 「영상질의」를 선보였다. 문공위 김기도의원(삼천포­사천·민자)도 방송위원회 감사때 이미 방송된 TV 프로그램 등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을 모아 편집한 15분짜리 비디오를 상영하며 저질프로대책을 추궁했다.
또 교육위의 김원웅의원(대전 대덕·민주)은 1년간 사립대학의 재정을 심층연구,그 성과를 「사립대학 재정실태 분석/문제점과 정책대안」이라는 교육백서(4·6배판 3백60쪽)로 발간했다.
김 의원은 이 책의 서문에서 『교육백서가 새로운 의정활동의 사례로 그리고 작지만 바람직한 시도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라고 언급. 보사위에서 중진 김상현의원(서울 서대문갑·민주)은 자비로 상수원 수질검사를 실시해 질의에 활용했다.
노동위의 원혜영의원(경기 부천 중을·민주) 역시 노동현장을 발로 뛰어 노조간부·근로감독관 등을 상대로 현 정부의 노동정책평가 등 설문조사를 두차례나 실시해 국감의 기초자료로 삼았다.
보사위 박주천의원(서울 마포을·민자)은 대학병원의 임상실험결과를 입수,우황청심원 제품들을 비교하면서 국립보건원의 과학적 임상시험 체계확립을 촉구했다. 같은 보사위의 김광수의원(전국구·민자)은 비서진을 동원,화장품 할인매장·회사직할매장·도매시장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뒤 이를 근거로 화장품 폭리사실을 폭로했다.
○즉석서 보도자료
○…같은당의 의원들끼리도 국감자료의 활용과 질의순서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위원회가 예년보다 훨씬 많았다는 평이다.
민주당의 제정구(경기 시흥­군포)·최재승(전북 익산)·이장희(전국구)의원 등은 고위공직자의 그린벨트내 토지보유실태 자료를 같이 건네받았으나 최 의원이 먼저 자료를 써먹어 제·이 의원이 『선수를 놓쳤다』고 무릎을 쳤다. 법사위의 민주당 강수림(서울 성동병)·이원형(서울 은평을)의원은 군사법원에 대한 감사에서 기무사의 비자금 관계를 질의서에 포함시켰는데 강 의원의 질의가 먼저 있자 이 의원은 『순서가 늦어 좋은 질의를 빼앗겼다』며 아쉬워했다.
또 여야 간사들끼리 협의해 질의순서를 정하는 과정에서 간사가 당소속 의원 가운데 자기 순서를 앞에 집어넣어 야당 고위층이 간사 선정의 중요성을 지적하게 만들기도 했다.
재무위의 산업은행 국감현장에 원진레이온 근로자들의 농성이 벌어지자 유준상의원(전남 보성·민주)은 즉석에서 보도자료를 만들어 주변의 기자들에게 사건배경을 설명. 같은 재무위의 박은태의원(전국구·민주)은 질의자료가 언론에 잘 보도되지 않자 보좌진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홍보했길래…』라고 불편한 심사를 비추기도 했다.
무소속의 한 의원은 산업은행 국감때 부총재를 호출했으나 끝내 오지 않자 『무소속이라고 무시하는거냐』고 탁자를 뒤엎으며 고함을 지르는 구태를 보여 수감기관의 직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부선 구태 재연
○…국감현장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감정파 의원들도 있는가 하면 눈물을 자주 흘린다고 구설수에 올랐던 장관이 소신파로 변신한 것도 화제.
재무위의 최두환의원(서울 강남을·민주)은 한은 감사에서 5공때 대구 광명그룹 강제해체조치를 추궁하면서 『고향 후배인 이 그룹의 회장이 화병으로 얻은 간암으로 얼마전 숨졌다』고 눈물을 흘려 잠시 장내가 숙연.
또 건설위의 하근수의원(인천 남을·민주)은 동료인 최재승의원이 통일 동산을 평화의 댐과 비교하며 불요불급한 사업이라고 따지자 『얼마나 많은 실향민들이 여기서 실향의 아픔을 달래는데…』라고 눈물을 글썽여 대조적이었다.
상임위 등에서 의원들의 따가운 질문에 눈물을 흘렸던 황산성 환경처장관도 이번 국감에서는 한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황 장관은 환경처 감사때 담당국장이 답변에 어물거리자 『대책이 부실하면 부실하다고 답하라』고 소신있는 답변을 촉구했다.
자신의 질의에 대한 근거를 대기 위해 물증을 내놓은 「물증제시파」도 눈에 띄었다.
냉해피해로 쭉정이가 된 볏단(김장곤의원·전남 나주·민주),엉터러 음주측정기(문정수의원·부산 북갑·민자),마장동시장 등에서 구입한 쇠고기덩이(김영진의원·전남 강진­완도·민주) 등이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김영진의원은 축협 간부들이 제시된 쇠고기가 한우인지 수입육인지 분간하지 못하자 『전문가들도 구별하지 못하는 마당에 소비자들은 어떻겠느냐』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파고들었다.
○…상황실을 비워가며 국정감사 현장에 출석하는 당직자가 있는 반면 감사현장에 제대로 나타나지 않아 지적을 받은 의원도 있었다.
민주당 정책위 의장인 김병오의원(서울 구로병)은 보사위의 국감현장에 꼬박 빠지지 않고 출석했는데 고위당직자들은 될 수 있으면 당의 상황실을 지키라고 주문했다.
반면에 행정위 소속의 한 전국구 의원은 줄곧 감사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같은 의원들로부터도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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